[기자의 눈]김상철/우물 안 통상장관

  • 입력 2001년 6월 25일 19시 29분


장재식(張在植) 산업자원부 장관은 25일 경기 화성시에 있는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을 방문했다.

장 장관은 공장을 둘러보며 기아차가 97년 부도 이후 구조조정에 성공하기까지 근로자들이 노력해준 점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장 장관의 이날 방문은 급하게 이루어졌다. 산자부 관계자가 기아차에 장 장관의 공장방문 사실을 알린 것은 이틀 전인 23일. 기아차 관계자들은 장 장관을 맞이하기 위해 휴일도 뒤로한 채 준비를 해야 했다.

장 장관은 예정대로라면 이날 미국 워싱턴에서 미국 상무부장관을 만나야 했다. 발등의 불인 철강문제 등 미국과의 통상 현안을 풀기 위해 대미 통상사절단 50여명을 이끌고 24∼29일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통상사절단에는 철강업계와 자동차업계 대표 등 미국과 통상 현안이 걸려 있는 국내 주요 기업 경영진도 포함돼 있었다.

장 장관이 갑자기 미국행을 포기한 것은 며칠 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투자박람회에 국내 기업 대표들과 함께 다녀온 장 장관이 국무회의에 참석한 뒤 ‘보이지 않는 입’으로부터 경고 메시지를 전달받았다는 것. “국내에서 민노총의 연대파업과 가뭄피해 등으로 민심이 흉흉한데 ‘한가하게’ 외국에서 시간을 보내서야 되겠느냐”는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 장관은 미국행 포기를 결정했다. 산자부는 주미 한국대사관 상무관에게 외교경로를 통해 미국 정부에 이 사실을 알리고 양해를 구하라고 지시했다.

철강협회 등 통상사절단에 포함됐던 기업 관계자들은 허탈해하고 있다. 한기업 관계자는 “국제적인 큰 흐름을 읽지 못하는 한국 정치인 및 관료들의 인식 수준을 보니 개탄스럽다”면서 “우물 안의 개구리 식으로 대응하다간 엄청난 국익을 잃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한국의 관료들은 이렇듯 걸핏하면 국내사정을 들어 중요한 대외활동 일정을 바꿔 신뢰도를 스스로 떨어뜨린다. 이것이 정부가 강조하는 ‘국제화’의 현주소인가.

김상철<경제부>sckim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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