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하이닉스 채권단 자금지원 '울며 겨자먹기'

  • 입력 2001년 6월 21일 18시 42분


하이닉스반도체의 지원을 두고 하이닉스와 줄다리기를 하던 한미은행이 하루 만에 ‘백기’를 들었다. 정부측의 으름장 때문이다.

채권단은 5월 하이닉스반도체의 전환사채(CB) 1조원 어치를 이달 20일까지 인수하기로 합의했었다. 이 중 한미은행에 배정된 몫은 347억원. 지원 결정을 위해 20일 열린 한미은행 이사회에서 은행측은 외국인 이사들에게 하이닉스를 지원해야 하는 ‘국가적 당위성’을 어렵게 설득해야 했다.

1시간이 넘게 지속된 이사회에서 외국인들이 “CB를 인수하되 주식예탁증서(DR)가 발행돼 상황이 좋아지면 여신을 회수하라”고 지시했다. 은행 실무자들은 ‘여신 감축에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문서화해 달라고 하이닉스에 요구했다. 그러나 하이닉스는 이를 거부했고 한미은행은 “우리는 채권단회의 때부터 반대했다”며 CB를 인수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부는 “채권단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은 한미은행에 엄중 대처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21일 오전 한미은행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서둘러 CB를 인수했다.

S은행의 여신 담당 임원은 “채권단간 자율협약이 지켜져야 한다”면서도 “채권단이 지원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은 75% 이상이 찬성했다는 의미인 만큼 반대표를 던졌던 25%가 이 결정을 따르지 않았다고 정부가 윽박지를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 임원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이닉스의 지원을 약속한 뒤 현대그룹에 대한 총 여신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타 계열사에서 차입금을 회수하는 은행도 있다”며 “이 때문에 멀쩡한 기업이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우려했다.

H은행의 한 임원도 “특정 기업에 돈을 빌려줬다는 이유만으로 신규자금지원을 요구받고 있다”며 “차라리 채권을 포기하고 신규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정부는 기업의 지원을 둘러싼 채권단 내 반발을 사전에 막기 위해 구조조정촉진법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은 채권단의 75% 이상이 찬성한 결정에 대해 나머지 25%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지만 ‘재산권 침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어 특정한 기업에 대한 무리한 지원은 끊임없는 불협화음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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