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희망이다/'우리교육' 토론회]"공교육 붕괴 위기"

  • 입력 2001년 6월 18일 18시 29분


《평준화와 자립형 사립고는 최근 우리나라 교육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두다.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려는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찬성론자와 반대론자 모두 우리 교육의 획일성을 비판한다.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지를 국가가 일일이 ‘간섭’해서는 교육의 미래가 없다는 진단이다.

우리 교육은 얼마나 획일적인가, 다양성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다양성이란 무엇인가.

학부모 교사 정책담당자 교육전문가가 한 자리에 모여 의견을 나눴다.》

토론회에 참석한 김주환 김정명신 이상진 이종태씨(왼쪽부터)

▽이종태 박사〓동아일보 교육팀이 선진국 학교들을 현지 취재한 내용을 보면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인 듯하다. 교육 현장에서 다양성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지를 우리의 교육 현실을 보완하는 관점에서 이야기해 보자. 우선 교육 현실을 짚어보자.

▽김정명신 회장〓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사람 대접을 받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며 졸업한 뒤 ‘밥벌이’를 하는 것, 이게 모든 학부모들이 바라는 최선의 교육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양성과 창의성을 길러줄 수단과 도구를 학부모도 사회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입시위주의 교육에 매이는 것이다. 시험만을 위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학부모는 별로 없을 것이다. ‘최선의 상태’를 알지만 방법을 찾지 못해 무리가 없는 ‘차선’을 택하는 것일 뿐이다.

▼글 싣는 순서▼

-2부 다양성이 경쟁력-
1. 한국
2. 독일
3. 프랑스
4. 덴마크
5. 미국
6. 좌담

▽김주환 교사〓공교육 붕괴의 본질은 획일적 시스템이다. 수업중 교과서 외에 다른 책을 못 보게 하니 청소년 독서 시장이 형성될 수 없고 교육의 생산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교사 중심의 다양한 수업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시도는 늘 견제당했다. 이러한 체제가 오래 지속됐기 때문에 이제는 교사들에게 자율적으로 하라고 해도 하기 힘들다. 이는 교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불필요한 과외 비용만 늘어나고 있다.

▽이종태〓실제 교육 현장에서 획일화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김주환〓학생은 가장 많은 시간을 교과 수업으로 보낸다. 교과서 내용이 천편일률적이고 교사의 자유로운 개입은 어렵다.

가르치는 내용은 학생들의 관심사나 실생활과 거리가 있어 학생들은 수업을 따분하게 여긴다. 학교 체제와 시스템이 사립이든 공립이든 똑같다. 교육이 아닌 행정이 중심이 된 체제에서는 획일화를 탈피하기 힘들다.

▽이종태〓획일적 교육을 극복하기 위해 교육과정부터 고쳐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국가 차원의 교육과정을 두는 나라는 많다.

그러나 우리 교육과정은 국가가 너무 세세한 것까지 규제하고 있다. 전교생이 3명뿐인 섬마을 학교나 1000명이 넘는 학교나 배우는 내용과 진도가 똑같다.

영연방 국가들도 국가 교육과정을 두고 있지만 학생들이 도달해야 할 기준 정도만 제시한다. 교재나 수업시수는 학교와 교사가 결정한다.

이 점에서 볼 때 7차 교육과정은 획기적이다. 그러나 근본 구조는 그대로다. 교사양성 임용 등 모든 체제를 바꿔야 한다.

▽이상진 과장〓우리나라 교육이 획일성이 강한 건 사실이다. 해방 이후 농업사회에서 벗어나 단기간에 급속한 양적 성장을 할 필요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획일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제도는 효율적이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정부가 독자적으로 교육의 방향을 이끌 수는 없다. 대다수 국민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평준화를 공교육 붕괴의 원흉으로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여론조사를 해보면 국민의 60∼70%가 평준화를 원한다. 교육이 평준화라는 틀 속에 들어가면 체제의 획일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종태〓다양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자.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이 있다. 숲 속 동물들이 학교를 세워 생기는 일들을 묘사했다. 토끼는 달리기는 잘하는데 수영은 못하고 오리는 거꾸로 수영은 잘하는데 달리기를 못한다.

그런데 모두 달리기와 수영을 해야 했다. 오리는 달리기 연습을 하다 물갈퀴가 찢어져 수영도 못하게 됐다. 독수리는 큰 날개를 펴면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야단을 맞았다. 독수리는 날개를 제대로 펴지 못해 날기 힘들게 됐다. 획일적 교육이 학생들의 고유한 특성을 얼마나 망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김주환〓아이들의 요구는 과연 다양할까. 그렇지 않다. 특별활동 신청을 받아보면 대부분 컴퓨터나 영어 등을 고른다. 제 잇속만 차리는 사회에서 살아가며 어른들의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이들의 체험과 인식의 공간이 지극히 좁다. 학교와 사회가 학생들에게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주지 않으면 정상적인 성장이 어렵다.

다양성의 추구는 돈과도 관계가 있다. 현재는 가정 형편이 좋은 아이들이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길 기회가 많다. 학교도 다양해야 하지만 우선 학교 밖 공간이 다양해져야 한다.

▽이종태〓진학 전 아이들의 그림이나 글쓰기는 독창적이다. 하지만 학교에 가서 2, 3개월만 지나면 그림이 똑같아지고 글을 써보라면 ‘못 쓰겠다’며 두려워한다. 학교가 아이의 잠재력을 키워주기보다 평균적 잣대로 억압하고 고유한 능력을 퇴행시켜버리는 것이다. 다양성이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뷔페식으로 늘어놓는 게 아니다.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아이가 원하는 교육을 하며 특성을 발현시키도록 돕는 게 다양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김정명신〓다양한 인성과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다. 남과 다르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왕따의 위험을 감수하며 남들과 동화됨을 거부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아이들을 어떻게 배려할 것인가. 한국을 떠나는 것이 살길이라는 생각을 하는 애들도 많다.

다르게 살겠다는 욕구가 있는 아이도 학교나 친구들에게 신뢰받지 못하면 망가진다. 아이들에게 TV 등 소비공간 아니면 재미없는 학교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부모나 아이에게 정말 힘든 일이다.

▽김주환〓국어 수업을 하다 보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논리적 글쓰기에 강하나 시쓰기에 는 약하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 오히려 시적이다. 읽기 쓰기에 능하지 않기 때문에 시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평가는 객관식이나 논술식밖에 없다. 시적인 아이들이 인정받기 힘들다. 교사에게 평가권을 달라. 그러면 시적인 아이도 인정받을 수 있다.

▽이종태〓학생들의 다양성을 길러주는 교육이 되도록 교육 내용의 선택권과 평가권을 달라는 이야기가 나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다양성 실현 방안으로 넘어간 것 같다.

▽김정명신〓발달지체 상태의 공교육에 대한 진단과 해답이 나와야 한다. 학부모 학교 교사단체들이 이상적인 학교 모형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집단들이 자유롭게 학교를 만들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를 풀어야 한다.

▽김주환〓동아일보에서 소개한 덴마크의 프리스쿨이 인상적이었다. 학교를 운영하는 데 은행에서 대출해주고 정부는 학생 수가 25명 이상이면 보조금을 준다. 학교가 정부의 것이 아니라 시민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설립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 규제를 풀면 자립형 사립고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김정명신〓5년 전 서울 강남지역 학부모들 사이에 초등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선 복수지원, 후 추첨’ 제도를 시행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학교 운영자가 학부모의 평가를 받기 싫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제한적이나마 학교 선택권을 주는 등 평준화 정책을 보완했더라면 공교육 붕괴라는 사태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받아들이는 민주성이 있어야 다양성도 확보할 수 있다. 정부는 대안으로 자립형 사립학교 등을 내놓았지만 부자들을 위한 제한적 선택권이라면 대다수 학부모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상진〓정부의 정책 방향도 다양화 특성화 자율화다. 자율학교 특성화학교를 지정하는 등 90년대 중반 이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이상적 학교’도 크게 보면 다양화 특성화의 차원에서 도입된 것이다.

▽이종태〓이상적 학교와 같은 시도는 다양성 교육에 도움이 안 된다. 일부 보여주기 위한 몇몇 학교에 재정투자를 집중해선 곤란하다. 일반화되기 어려운 모델이라면 교육 불평등만 조장하게 될 것이다. 이보다는 시스템을 바꾸고 교사들이 다양한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교원 인사체제도 문제다. 학교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학교 단위에서 교사를 채용할 수 있?杵?한다. 또 순환근무체제에서는 학교에 대한 애정과 책임의식을 갖기 힘들다.

▽이상진〓이 논의의 뿌리를 찾아가면 결국 학벌 중심의 사회 가치에 귀착된다. 학벌이 변변찮으면 돈도 벌지 못하고 결혼마저 하기 힘들다. 정부의 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학부모 교사들 모두의 공동 노력 없이는 힘들다.

▽이종태〓교사들이 신뢰받으려면 교사 집단 내의 자정적 실천운동이 있어야 한다. 학부모 단체도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바람직한 교육 환경을 조성하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교사 단체와 학부모 단체가 제 몫을 다한다면 우리나라 교육을 다양화하고 정상화하려는 노력은 큰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정리〓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참석자 명단

김정명신(45·서초강남 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 김주환(37·서울 장위중학교 국어교사, 전국 국어교사모임 회장) 이종태(45·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이상진(43·교육인적자원부 지방교육기획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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