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테크…대체 뭐하는 회사예요

  • 입력 2001년 6월 14일 18시 53분


"○○텍, ○○테크, ○○테크놀로지…. 도대체 이름만 봐서는 뭐하는 회사인지 알 수가 없네? 이름도 비슷비슷하고…"

증권투자자 뿐 아니라 벤처업계 사람들조차 헷갈리는 기업이름이 적지않다. 정보통신(IT)기업들은 특히 영어 일색으로 작명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테크 ○○콤 ○○시스템은 기본이고 전혀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약자로 이름을 쓰는 기업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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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시장에 등록된 168개 IT분야 기업중 이름에 영어가 포함된 곳은 149개사. 10개중 9개꼴이다. '텍' '테크' '테크놀로지' 가 포함된 기업은 전체의 16%, 케이엠더블유(KMW) 제이씨(JC)현시스템 KDS 등 영어약자를 쓴 기업도 15%에 이른다. 비슷한 가운데서 그나마 튀려고 하다보니 갈수록 단어도 어려워지는 추세.

이같은 현상은 IT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올 들어 이름을 바꿨다고 코스닥시장에 공시한 16개사 중 새 이름에 영어를 포함시키지 않은 회사는 단 한 곳에 불과했다. 올해 코스닥시장에 등록한 44개중 영어이름을 포함시키지 않은 곳은 한국토지신탁 승일제관 동부정보기술 등 8개 뿐이었다.

기업들이 앞다퉈 영어이름으로 바꾸는 이유는 대개 두가지. 해외에 진출할 때 이름 때문에 번거롭지 않다는 점, 특히 '테크'나 '시스템' 등을 쓰면 첨단기술기업의 이미지를 물신 풍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깟 이미지 때문에 오랫동안 써온 이름을 버리느냐'는 생각은 브랜드의 가치를 잘 모르는 짧은 소견. 세계적 브랜드 평가기관인 인터브랜드가 99년 기준으로 추산한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는 무려 840억달러. 르노가 삼성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계속 사용할 것을 요구한 것도 브랜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

한국외국어대 경영학과 전성률교수(마케팅 전공)은 "기업들이 시대변화에 맞춰 이름을 바꾸는 것은 탓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유행을 쫓은 이같은 작명법이 전문가들이 볼 때 낙제수준이라는 점.

브랜드 전문업체인 메타브랜딩의 양문성이사는 "자기들만 알 수 있는 회사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고객들을 무시한 공급자 중심의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LG나 SK 등이 그룹이름에 영어약자를 쓴 이후 중소기업들도 이를 뒤따르는 추세지만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엄청난 광고비를 들여야만 '영어약자'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각인할 수 있다는 것.

전교수는 "예전 브랜드를 완전히 버리고 180도 다른 새 브랜드를 쓰는 것도 우리 기업들이 범하는 흔한 잘못 중 하나"라면서 "브랜드는 가급적 연관성을 갖고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럭키금성를 LG로 바꾼 것은 성공적이지만 현대전자를 하이닉스반도체로 바꾼 것은 실패작이 될 공산이 크다는 주장. 실제로 많은 일반인들은 하이닉스반도체를 벤처기업으로 오해하고 있다.

전교수는 "브랜드는 자기와 남을 구별하는 수단"이라며 "따라서 브랜드는 차별성이 있고 쉽게 기억할 수 있으면서 뜻을 잘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광암기자>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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