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채업자 불법 신용조회 피해 실태

  • 입력 2001년 6월 11일 18시 33분


회사원 A씨는 최근 H은행에 대출을 받기 위해 찾아갔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빌려쓴 일이 전혀 없었지만 은행측으로부터 “사채업자가 당신의 신용을 조회한 전력이 있으니 돈을 빌려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것. 확인 결과 A씨는 동생이 최근 일본계 대금업체에서 돈을 빌려쓰면서 자신의 인적사항을 알려줬으며 이 때문에 사채업자가 신용정보회사에 자신의 신용을 조회했다는 것을 알았다.

사채업자가 개인의 신용정보를 조회했다고 해서 은행대출을 받지 못한다는 규정은 없다. 그러나 은행을 비롯한 제도권 금융기관들은 대출심사를 할 때 신용평가기관의 신용조회 기록이 있을 경우, 특히 신용조회가 사채업자와 관련이 있는 경우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고 관행적으로 대출을 기피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는 현재 A씨와 같은 불법 신용정보 조회로 인한 피해 사례가 하루 서너건씩 접수되고 있다. 일본계 대금업체인 A&O인터내셔널은 최근 한국신용평가에 4만1000여명의 개인 신용 정보를 조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사채업자들과는 달리 대규모 자본으로 조직적으로 영업을 하는 일본계 사채업자들은 국내 신용정보제공업체에 무차별적으로 신용정보를 조회하고 있다. 또 국내의 일부 할부금융사들도 같은 방식으로 돈을 빌린 사람의 주변 인물에 대한 신용정보를 조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O의 불법 신용 조회에 대해 금감원에 현행법 위반 여부를 묻는 공식적인 질의를 보냈으며 A&O뿐만 아니라 다른 일본계 대금업체와 국내 할부금융사들의 불법 신용정보 조회 실태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본인 동의없이 신용조회를 하는 것은 현행법상 명백한 불법.

금감원도 한국신용평가 한국신용정보 등 국내 7개 신용정보회사에 “불법적인 신용정보 조회에 대해 응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제도권 금융기관의 불법적인 신용정보 조회에 대한 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A&O는 98년 7월 일본에서 들여온 1억5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설립한 뒤 당초 무역업으로 등록했다가 유사금융업으로 바꿨다. 현재 1000억원에 육박하는 대출 잔액을 내년까지 2000억원으로 늘리고 지점을 50개(현재 28개)로 늘릴 계획이다.

A&O이외에 99년 10월 2억3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출범한 프로그레스도 600억원대의 대출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일본계 대금 업체. 프로그레스는 여성 전용 대출기관인 ‘해피레이디’라는 자회사도 갖고 있다.금감원 관계자는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입증할 수 있다면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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