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제성호/우리 배가 北영해 갔다면…

  • 입력 2001년 6월 5일 18시 36분


북한상선 3척이 제주해협을 잇따라 무단 침범하고 이중 1척이 서해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을 월경해 돌아간데 이어 또 다른 1척이 서남해 영해를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무해통항권 서로 인정해야▼

남북관계가 소강상태에 처해 있고, 미국이 대북정책 재검토를 마무리해 가는 미묘한 시점에서 북한이 왜 이런 행위를 했는지 그 정확한 의도를 가늠키는 어렵지만, 아마도 경제·군사·외교적 동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우선 북한의 영해침범은 제주해협에서의 무해통항권을 인정해 달라는 계산된 시위라고 볼 수 있다. 북한측이 제주도 남방의 공해를 둘러 항해하는데 드는 경비와 시간을 줄이려면 제주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북한은 남북대화에 목말라 하는 남한의 입장을 십분 활용해서, 상당한 경제적 이득이 되는 무해통항권을 우리측으로부터 얻어내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또한 북한의 우리 영해 및 NLL 침범에는 대미평화협정 체결의 명분축적과 향후 북-미회담이 재개될 경우 NLL 대체문제를 협상카드화하려는 복선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당분간 북한은 우리측 영해를 계속 침범하여 우리측 대응을 시험하는 한편, 무해통항권 행사를 기정사실화 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영해침범이라는 돌출행동에 대해 정부는 ‘앞으로 제주해협 통과를 원하는 북한상선이 우리측에 사전통보나 허가요청 등 필요한 제반조치를 취할 경우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의 방침은 이번 사건이 남북관계에 악재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면서, 남북대화 재개 분위기 조성을 위한 배려 차원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정부의 조치가 남북관계를 고려한 고육지책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만족스러운 수준의 것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와 관련, 북한선박에 대해 국제관습법상 확립된 무해통항권을 허용하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러한 주장은 남북관계가 국제관계가 아닌 특수관계이며, 더욱이 법적으로 정전체제 하에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다자조약 규정이나 국제관습법이 그대로 남북관계에 적용된 적은 없다. 남과 북은 언제나 특별합의에 의해 현안문제를 처리해 왔다. 대한적십자사의 인도적 구호물자나 정부차원의 지원물자를 수송할 때 북한측 영해를 통과한 적이 있으나, 그것은 모두 쌍방간의 합의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금강산 관광선이 북한의 연안항로를 이용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적대적 대치관계에 있는 남북관계에 비추어 볼 때 아무런 조건 없이 단지 사전통보나 허가요청만으로 무해통항권을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우리측의 안보를 위협하는 자충수가 될 수 있으며, 남북관계 발전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마땅히 정부는 북한측에 대해 상호주의의 보증을 요구하고, 그 조건 하에서만 북한측의 무해통항권 허용을 검토할 것이라고 발표했어야 했다. 그동안 북한은 그들 영해를 침범한 우리 어선들을 나포했고, 다수의 선원들을 지금까지도 억류하고 있다. 우리 상선이나 어선들은 앞으로도 북한측 주변해역에서 나포 처벌될 위험부담을 안아야 하는 반면, 북한선박들만이 사전통보나 허가요청만으로 자유롭게 우리 영해를 이용한다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 처사라고 하겠다.

▼당국간 대화 재개 요구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북한측에 당국간 대화 재개를 요구하고, 협상을 통한 해결을 강구해야 한다. 그리고 무해통항권 문제를 상호주의 정신에 입각, 한반도 주변해역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남북협상에서는 동해어장의 이용문제, NLL수역에서의 꽃게잡이 문제도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NLL 대체를 포함한 해상경계선 문제는 남북기본합의서와 불가침부속합의서에 명시된 대로 당국간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그 전까지는 남북한의 해상관할구역이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향후 정부는 안보와 남북협력, 상호이익이 조화를 이루는 방향에서 무해통항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보다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대응이 요망된다고 하겠다.

제성호(중앙대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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