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비행기야?새야?, 첩보기 작게 더 작게

  • 입력 2001년 5월 23일 18시 53분


메사추세츠공대 링컨랩이 개발 중인 초소형 비행체.
메사추세츠공대 링컨랩이 개발 중인 초소형 비행체.
2010년 휴전선. 손바닥만한 초소형 비행체가 휴전선을 넘나들며 북한군의 움직임을 샅샅이 사진으로 찍어 송신해온다. 이 비행체는 워낙 작아 레이더로도 잡히지 않을뿐더러 새나 곤충과 구분되지도 않는다.

미래의 첩보전 시나리오다. 초소형 비행체(MAV〓Micro Air Vehicle)는 이밖에도 보안시설의 탐지, 전투나 테러 진압에 나서는 군인 또는 첩보원에게 필수 불가결한 휴대품이 될 전망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팀이 지난 99년 12월 모형항공기용 엔진과 무선조종장치를 이용해 무게 95g, 크기 20㎝짜리 초소형 비행체를 만들어 시험비행을 했었다. 그러나 비행기는 10여 초밖에 날지 못했고, 결국 연구는 중단돼 버렸다.

이번에는 정부출연연구소의 맏형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나섰다. 5년 계획으로 12억 원을 들여 초소형 비행기를 만드는 데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 개발 시작 2년이 못돼 희소식이 날아왔다. KIST 초소형 비행체 연구팀이 지난 4월 7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국제 초소형 비행체 경연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이다.

휴대폰 정도의 무게인 130g, 크기 22㎝ 짜리 이 비행기는 요즘도 서울 홍릉 근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하늘을 조종사의 원격 제어 명령에 따라 비행하면서 근처 건물과 도로의 사진을 찍어 송신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최대 6분.

이 비행기에는 자체 개발한 25g짜리 CMOS 카메라가 장착돼 있다. 엔진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원격조종 비행기용 엔진을 수입해 붙였다. 하지만 더욱 작은 엔진을 만들기 위해 연구팀은 현재 5㎜의 마이크로개스터빈을 개발 중이다.

연구팀은 10년 뒤에는 반경 3㎞ 이상 영역을 30분 이상 스스로 날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전송하는 무게 100g, 크기 15 ㎝ 짜리 초소형 비행체를 만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개발 책임자인 김성일 박사는 “초소형 항공기 개발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자율제어칩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칩에 관성항법장치, 위치측정시스템(GPS), 나침반, 속도계, 거리계 등이 들어있어야 하므로 미소전자기계시스템(MEMS) 기술의 응용이 필수적이다.

MIT 출신의 젊은 기대주인 세종대 안존 교수도 길이 15㎝, 총중량 35g짜리 초소형 항공기를 만들고 있다. 안 교수는 “초소형 비행체에는 큰 비행기와는 전혀 다른 공기역학적 원리가 적용돼 날개의 면적이 크고 천천히 날아야 유리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가 만든 비행체는 날개가 유난히 크다. 또 비행체가 손가락크기까지 줄어들면 고정날개보다 날개짓을 하는 곤충형이 효과적이다.

초소형 비행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92년 걸프전 때. 미군은 당시 길이 1.5m 정도의 소형 무인정찰기를 투입했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미 국방부 국방과학연구소(DARPA)는 지난 97년부터 크기 15㎝ 이하의 초소형 항공기 관련 기술 개발을 위해 MIT, 캘리포니아공대 등에 4년 동안 3500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해오고 있다.

선두주자인 미국 에어로바이론먼트사는 98년 길이 15㎝의 ‘블랙 위도우’를 17분 동안 비행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회사는 캘리포니아공대와 공동으로 박쥐 모양의 비행체도 개발 중 이다. 또한 캘리포니아대(버클리)는 곤충처럼 날개짓을 하며 날아가는 1㎝크기의 ‘스마트 파리’를 만드는 데 도전하고 있다.

연구팀들은 이런 박쥐나 파리 비행체를 만들기 위해 철새와 곤충의 비행원리를 연구하고 있다. 철새는 불과 3∼4g 정도의 체내 지방을 연료로 3000㎞를 쉬지 않고 비행하기 때문이다.

<신동호동아사이언스기자>dong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