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필립 골럽/'亞안보 강조' 미국의 노림수

  • 입력 2001년 5월 23일 18시 36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국방정책 재검토의 일환으로 미국은 국제 안보의 우선 순위를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옮기려 하고 있다.

언뜻 보면 이 선택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거의 100년간 유럽은 국제 분쟁의 진원지였다. 1, 2차 세계대전과 냉전 등 세력 균형을 위한 대규모 전쟁이 모두 20세기 유럽에서 발발했다. 미국은 이 세 차례의 전쟁에 개입했고 그 결과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북-중 위협 과장해 영향력 확대▼

발칸반도의 불완전한 평화, 터키와 그리스간의 지속적인 갈등, 러시아와 서구의 모호한 관계 등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평화를 달성했고 군사력에 의한 세력 균형은 생각할 가치도 없게 됐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동아시아에서는 냉전이 종식되는 상황에서 군비경쟁이 약화되기보다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유럽과는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전후(戰後)에 새로운 역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청산 과정이 없었다. 구조적 변화, 특히 중국의 증가하는 경제력은 향후 몇십년 내에 지역 세력 균형의 급격한 변동을 초래할 것이다.

미국의 일부 고위 관리들은 “아시아가 새로운 안보 우선 지역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주요 분쟁이 유럽보다는 아시아에서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한다. 아시아는 미국의 군사력을 지역 안정의 핵심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 미국이 중재자로서 개입하지 않는다면 동아시아에서 세력 경쟁은 핵 확산, 나아가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미국의 새로운 국방정책은 많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중국의 군 현대화가 미국이 안보 중심축의 이동, 대륙간 미사일 목표 재설정, 동아시아에 새로운 해상 군사 기지 구축(미국은 동남아 국가들의 영토내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겠다고 요구해 왔다) 등을 추진하게 된 진정한 이유인가. 전역미사일방어(TMD)체제는 북한의 제한된 미사일과 핵보유 능력에 대항하기 위한 조치인가.

미국의 외교 국방정책에 대한 비판론자들은 중국과 북한은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에 심각한 위협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챌머스 존슨 일본 정책 연구소장은 “외교정책 입안과정에서 미 국방부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음은 정부의 공식적인 발언에서 중국과 북한이 강조되고 있는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존슨소장은 이것이 워싱턴의 전후 안보체제를 동아시아로 확대시키려는 일종의 술수라고 강조한다.

시카고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미국은 지역적 위협을 과장함으로써 2차대전 후 동아시아에 만들어 놓은 이른바 ‘군사 라인’을 유지하고 아시아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부시 행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선택함으로써 자가 발전식의 예측을 하고 있으며 아시아의 TMD와 첨단 군사 하드웨어가 중국을 견제하기보다는 오히려 지역 군비경쟁을 강화시킬 것으로 많은 분석가들은 진단한다. 커밍스교수는 “미국이 70년대에 그랬듯이 중국도 다탄두 핵미사일로 미국의 TMD에 대응할 것이며 다른 국가들도 군사력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가 추진중인 미국의 국방 전략은 군비경쟁을 가속화할 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협력을 반대해 온 중국 지도부내 매파의 입지를 강화함으로써 그들이 내세우는 목표와는 전혀 상반된 효과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커밍스교수와 존슨소장이 지적하듯이 미국의 국방정책은 긴장을 오히려 강화시켜 아시아에 있어서 미국의 지역 헤게모니를 영속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군사력 재동원 수단일수도▼

국제전략연구센터의 에드워드 루트워크는 4월12일 LA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미국 해군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와의 우발적인 충돌 사고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는 쪽은 미 국방부라고 주장했다.

딕 체니, 콜린 파월, 폴 월포위츠, 존 켈리, 도널드 럼스펠드 등 부시 행정부내의 중량급 인사들은 대부분 국방부에 포진하고 있다. 이 중에는 60년대 초 ‘미사일 갭(Missile Gap·미사일 등 첨단 무기 분야에서 구 소련에 비해 열세이던 상황을 뜻함)정책’ 입안에 중요한 역할을 한 앤드루 마셜도 포함돼 있다. 미사일 갭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은 냉전 종식 후에 미국의 군사력을 재동원하기 위한 핑계가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필립 골럽(프랑스 파리 8대학교수 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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