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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5월 15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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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건 학장〓최근 신문에 난 사진 한 장이 인상에 남는다. 5·16 세력에 저항했던 대표적 인물의 하나인 김지하(金芝河) 시인이 박정희기념관 건립에 반대하는 1인 피켓시위를 하는 사진이었다. 농촌 노인들이 향수 속에 5·16을 긍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인 이인화 교수가 5·16을 긍정평가하는 관점에 선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인화 교수〓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은 상찬(賞讚)이나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아직 연구하고 탐구해야 할 대상이라고 본다. 근대화론과 민주화론이라는 두 축이 무너지면서 지적 엘리트들이 허무주의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진 게 요즘 현실이다.
▽양 학장〓근대화보다는 산업화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닌가. 또 일부에서처럼 민주화론자를 정치권력 경쟁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으로 축소하는 것도 문제다. 민주화론의 핵심적 의미를 인권이라는 개념으로 보고 싶다.
▽이 교수〓마찬가지로 근대화론을 단순히 물질적 복지를 빨리 늘리자는 논의로 보는 것에 반대한다. 물질적 복지로서 구현할 수 있는 현실적 인권, 즉 안심하고 세끼 밥 걱정 않고 살 수 있는 인권도 중요하게 평가돼야 한다.
▽양 학장〓공감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5·16은 근대화를 위해 인권을 희생하라는 논리가 강했다. ‘절대적 빈곤까지도 잠시 참아라’, ‘평등한 분배는 뒤로 미뤄라’ ‘정치적 자유권도 유보하자’ 등의 논리들을 받아들일 만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교수〓2차대전 후 자본주의시장의 경쟁이 가열되면서 우리가 빨리 뛰지 않으면 최소한의 의식주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당시 우리의 국민총생산(GNP)은 방글라데시보다 못했다. 60년대 세계 경제의 호황기를 놓쳤다면 오늘의 우리가 가능했겠는가.
▽양 학장〓미국의 어느 학자가 쓴 책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60, 70년대 한국과 브라질의 ‘개발과 인권’을 비교하면서 한국을 불균형과 불평등 격차가 상당히 축소된 사례로 꼽았다. 이것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 교수〓근대화론자나 민주화론자에게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부정부패는 안 된다’ ‘무지에서 탈출하자’ ‘가난에서 벗어나자’는 한국적 휴머니즘이었다.
▽양 학장〓5·16이 남긴 것 중 청산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 교수〓권위주의와 정경유착과 같은 경제·사회의 체질을 만든 것은 부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5·16의 부정적 측면을 가장 강력히 비판했던 우리 세대가 요즘은 난파선 탈출자처럼 돈벌이에 매달리고 있어 실망스럽다.
▽양 학장〓요즘 민주화 세력의 모양이 우스워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민주화 세력의 대표격인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자신들이 욕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와 닮은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박정희 시대가 남긴 부정적 유산으로 볼 수 있다.
▽이 교수〓근대화 세력엔 세 가지 장점이 있었다. 첫째, 무엇보다 노숙자가 굶어죽을 때 외국에 쌀을 퍼주지는 않았다. 확고한 국가공동체 의식이 있었다. 둘째, 민주화 세력이 집권 이후에 보여준 흐릿한 자세가 아닌 청렴한 공직기강을 갖고 있었다. 셋째, 전문가를 존중하는 풍토가 있었다. 요즘처럼 전문가 의견이 정치적 이유로 뒤집히는 일은 없었다.
▽양 학장〓박정희 시대가 전문가를 존중한 건 사실이다. YS, DJ 정권은 이른바 낙하산인사에서 보듯 봉건적 가신관계에 얽매이는 자가당착적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국가 생존을 위해 개인의 희생이 일부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논리는 위험하다.
▽이 교수〓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이해해야 한다. 1964년 당시 박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하려 할 때 항공료 20만달러가 없어 독일대통령에게 빌려서 갔고, 박 대통령은 아우토반(독일 고속도로)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양 학장〓정치권 일각에서 ‘근대화와 민주화의 화해’를 화두로 삼는 이들이 있는 듯하다. 두 세력이 당시 상황에서 나름의 긍정적 역할을 한 건 사실이나 오늘날 두 세력을 승계했다고 주장하는 세력을 긍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몇몇 정치인들이 5·16을 상징하는 세력과 손잡으면서 ‘두 세력의 화해’라고 명분을 내거는 것은 긍정하기 어렵다.
▽이 교수〓근대화와 민주화는 당시 지식인들의 이념적 잣대였고 휴머니즘의 원천이었다. 이것들이 왜 화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입장과 지조를 지키며 정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화해 주장의 뒤엔 개인의 사리사욕이 담겨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양 학장〓두 세력의 화해란 속임수다. 그 밑에 깔린 것은 지역주의연합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가령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나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부총재와 손잡는 것은 근대화가 아니라, 지역주의와 손잡는 것이다.
▽이 교수〓5·16에서 계승해야 하는 것은 세대교체론이라고 본다. 무능하고 부패한 기성세대를 보내고 유능하고 청렴한 30, 40대가 나라를 위해 잘해 보자는 세대교체론은 오늘을 만든 원동력의 하나였다.
▽양 학장〓미래를 위해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우선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시장경제에 모든 것을 맡길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또 하나는 합리적인 전문가 세력이 민주적 흐름과 결합돼야 한다는 것이다. YS, DJ의 실패는 민주화 세력과 합리적인 전문가 세력이 결합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이 교수〓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 사회 각 방면이 너무 아마추어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개혁이나 실험이라는 말로 잘못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근대화와 민주화의 경험에서 공동체주의를 배워야 한다.근대화와 민주화에는 휴머니즘 즉, 나라가 잘 되는 것을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착한 마음이 있었다. 그런 휴머니즘을 되새겨야 한다.
<정리〓문철·하태원기자>fullmoon@donga.com
▼대담자 약력
양건 △54세, 함북 청진 △서울대 법대 △한양대 교수 △통일부 정책평가위원
이인화 △35세, 대구 △서울대 국문과 △소설‘영원한제국’△이상문학상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