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본 바둑계 요람 '기타니도장' 몰락

  • 입력 2001년 5월 2일 19시 09분


지난달 25일 오후 8시55분 일본 도쿄 일본기원 대국실.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 9단이 물끄러미 반상을 내려보다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제39기 쥬단(十段)전 도전기 마지막 대국에서 도전자 왕리청(王立誠) 9단에게 불계패를 당한 것. 그는 이날 패배로 무관(無冠)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날 고바야시 9단의 패배는 30여 년 동안 일본 바둑계를 호령한 기타니 도장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기타니 도장은 일본 현대 바둑의 대가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9단이 2차 대전 후 세운 바둑 도장. 75년 그의 갑작스런 발병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80여명의 프로기사를 배출해낸 일본 바둑계의 요람이었다.

오다케 히데오(大竹英雄), 이시다 요시오(石田芳夫), 가토 마사오(加藤正夫),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 고바야시 고이치, 조치훈 9단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기사들이 모두 이 곳 출신. 또 조남철 김인 윤기현 하찬석 9단 등 한국 기사들도 이 도장에서 바둑 유학을 했다. 기타니 출신 기사의 단위를 모두 합치면 500단이 넘는다.

기타니 도장의 화려한 등장은 69년부터. 도장의 맏형격인 오다케 9단이 당시 사카다 에이오(坂田榮男) 9단으로부터 쥬단전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본격적인 타이틀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후 일본 7대 기전의 타이틀 보유자 명단에서 기타니 도장 출신이 빠진 적이 없었다. 70년대 이후 일본 바둑의 역사는 사실상 ‘기타니 도장’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0년대는 오다케, 이시다, 가토, 다케미야 9단이 군웅 할거한 시대. 80년대와 90년대 20여년간은 조치훈 9단과 고바야시 9단이 서로 타이틀을 주고 받으며 ‘양웅(兩雄) 시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조치훈 9단이 기세이, 메이진, 혼인보를 잇따라 빼앗기며 몰락한데 이어 고바야시 9단도 고세이(碁聖) 덴겐(天元) 쥬단을 차례로 내줘 30여 년 만에 기타니 도장 출신의 타이틀 보유자가 한 명도 없게 됐다.

기타니 도장이 문을 닫은지 26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기타니 도장 출신자들의 장기 집권이 이어진 것은 그동안 이들을 능가할 만한 신진 세력이 없었기 때문. 기타니 도장 해체 이후 기타니 도장만큼 젊은 기사들을 강력하게 단련시킨 양성소가 일본에 없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기타니 도장의 몰락은 세월의 흐름을 반영하기도 한다. 기타니 출신 기사들이 대부분 전성기를 지나면서 퇴출되고 있는 것. 기타니 출신 중 나이가 비교적 어린 축에 속하는 조치훈 고바야시 9단 모두 40대 후반이다. 그리고 이들의 자리를 물려받은 왕리청 왕밍완(王銘琬)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9단 모두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나이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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