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과기연구 객관적 평가제 만들자

  • 입력 2001년 5월 2일 18시 51분


3월 개각에서 김영환 민주당 의원이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취임하자 과학기술계 일각에서는 김대중 대통령 집권 후 3년 만에 비로소 정권교체가 이뤄졌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 집권 초기부터 과학기술부 장관 자리는 자민련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의 정부 출연연구소나 기관에는 정치적 배경을 가진 인물이 감당할 만한 자리가 많지 않은데다 김대통령의 측근 중에 과학기술계 출신이 전혀 없다시피 해 50년만의 여야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그 때 그 사람들 이 요직을 지키고 있는 게 작금의 과학기술계 현실이다.

▼개혁 더 미룰 수 없다▼

거의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박익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이하 자문회의) 위원장을 들 수 있다. 1991년 헌법기구로 설치된 자문회의는 대통령에게 과학기술 정책 및 제도 발전에 관해 자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위원장은 장관급 상근직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1992년 김대중 대통령후보 과학특별보좌관과 1997년 국민회의 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두 차례 대선에서 김대통령을 보필한 그에게 1998년 5월 자문회의 위원장 자리가 돌아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김영환 장관의 취임으로 뒤늦게나마 김대통령의 측근들이 과학기술 정책의 자문과 집행을 함께 책임지는 체제가 구축됨에 따라 대통령이 21세기 국가 발전의 핵심인 과학기술 정책의 최종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동안 김대중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추진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지적과 우려를 일시에 불식할 수 있는 호기를 맞은 셈이다.

1924년 함경남도 출신인 박위원장과 1955년 충청북도 태생인 김장관은 나이 차이가 31살이나 된다. 김대통령의 가용 인력이 넉넉치 못하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나이를 빼놓고는 닮은 점이 너무 많다.

두 사람은 우선 과학기술계에서 배출된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닮았다. 박위원장은 원자력 전문가이지만 과학기술계의 그 많은 감투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제도권 밖에서 여러 직장을 전전했으며 치과의사 출신인 김장관은 노동운동가 시인 벤처기업가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스스로 비주류 인생을 살아왔다고 말한다. 또 두 사람은 뛰어난 글솜씨로 유명하다. 박위원장은 과학 서적에 관심조차 돌리지 않던 1954년 '과학의 철학'을 펴낸 이후 '과학기술의 사회사'등을 집필한 국내 제1호 과학평론가이며 김장관은 동시집인 '똥먹는 아빠'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재주꾼이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김대통령과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다. 박위원장은 부산 피난시절 광복동 네거리 다방에서 김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등과 어울려 나라 걱정을 한 인연으로 '평생 친구'가 됐으며 김장관은 1996년 국민회의에 입당해 정권 창출에 기여했다.

무엇보다도 과학기술계에서 두 사람의 결정적 공통점은 김대통령이 집권하지 못했으면 현재의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두 사람은 과학기술계에 눈꼽 만큼도 빚진 게 없으므로 과학기술자들의 중지를 모아 환부를 도려내고 개혁의 새 살이 돋아나게 할 수 있는 적임자들이다.

정부가 서둘러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연구결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제도의 도입이 우선 손꼽힌다. 박위원장은 공사석을 가리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출 증대 없이는 우리가 존립할 수 없으며 수출 상품의 경쟁력 강화는 과학기술자의 몫"이라고 강조하면서 그런데 일부 과학자들은 "기초과학을 빙자해 불요불급한 연구로 예산을 낭비한다"고 지적해왔다. 박위원장은 일부 과학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걱정하면서 그 이유로 "첫째 제대로 된 평가제도가 없고, 둘째 박정희 정권 때부터 권력 주변을 맴돈 과학자들이 인사와 예산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라고 열변을 토하곤 했다.

▼예산은 투명하게 운용해야▼

정부는 2002년에 연구개발비를 국가예산의 5%로 늘릴 계획이다. 김장관이 예산 운용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담보하는 평가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다면 외롭게 실험실을 지키는 수많은 과학기술자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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