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고이즈미 왜 인기있나

  • 입력 2001년 5월 1일 18시 52분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의 지지도가 80%대를 넘어서 전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 군데의 여론조사라면 고개를 갸웃할 텐데 모든 언론사의 조사결과가 똑같다. 거품이 아닌 셈이다.

그가 누리고 있는 인기의 상당부분은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총리의 덕분이라는 역설도 가능하다. 모리 전총리가 너무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야구선수에 빗대 ‘중간계투’라고 불렀지만 그마저 실패했다. 잇단 실언과 무정견, 파벌감싸기와 지역구 편애 등으로 그의 인기는 9%대까지 떨어졌다. 국민은 처음엔 “자질이 없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아예 포기해 버렸다. 정치만화가들은 “국민은 고생했지만 우리에겐 상당히 고마운 사람”이라고 비아냥댔다.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위기에 대한 현실인식. 모리 전총리는 모든 문제를 자기 관점에서 해석하고 대응했다. 결과는 근거없는 낙관론에서 나온 해명뿐이었다. 국민은 언제부턴가 “그의 말은 안 들어도 안다”고 고개를 돌렸다.

고이즈미 총리는 국민이 자민당에 대해 실망을 넘어서 증오를 하고 있다는 점을 정확히 읽었다. 그리고 자민당을 한번 고쳐보겠으니 힘을 달라고 호소했고 결국은 성공했다.

정확한 현실인식과 비전 제시는 정치 리더에게 꼭 필요한 덕목 중의 하나다. 모리 전총리에게는 그 덕목이 없었다. 있고 없고의 차이는 컸다. 모리 전총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가장 인기있는 총리가 됐다.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 중에는 이웃국가들을 긴장시키는 것들도 많다. 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보장, 유사법제 검토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등. 그러나 일본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나중에 그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모른지만 적어도 일본 국민은 그에게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를 알아야 그의 인기 이유를 알 수 있다.

심규선<도쿄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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