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인철/교육부의 '불경죄'

  • 입력 2001년 4월 30일 19시 01분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달 24일 박사학위를 받고도 형편없는 강사료와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신분 불안을 겪고 있는 시간강사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다. 2004년까지 국립대 전임교원 2000명을 채용하고 강사료도 2만7000원에서 3만4000원으로 올린다는 내용이었다.

한완상(韓完相) 교육부총리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보고한 이 대책을 언론도 비중 있게 보도했다. 교육부 내부에서도 ‘이만하면 잘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 다음날 뜻밖의 문제가 터졌다. 정책 내용은 보도가 잘 됐지만 ‘김 대통령 지시로 교육부가 대책을 마련했다는 대목이 왜 한 줄도 없느냐’는 지적이 청와대 비서설 내에서 제기됐다. 이 때문인지 박준영(朴晙瑩)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은 25일 오전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이례적인 브리핑을 했다.

“김 대통령은 박사학위를 딴 지식인들이 ‘국민의 정부’ 아래서 낮은 임금과 신분 불안으로 어려움을 겪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이돈희(李敦熙) 전 교육부장관 때부터 강사료를 올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 왔다. 그래서 교육부가 기획예산처 등과 협의해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들은 청와대에 불려가 혼쭐이 났다. 한 부총리는 26일 밤 KBS ‘뉴스라인’에 긴급 출연해 강사처우개선대책이 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마련된 것임을 밝혔다. KBS측은 당초 한 부총리의 출연에 대해 “뉴스가치가 떨어져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했으나 결국 교육부측의 ‘통사정’에 가까운 한 부총리 출연 희망을 들어주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의 잦은 질책에 교육부는 매사가 비밀이고 살엄음판인 것 같다. 국립대 전임교원 채용 계획도 예산 때문에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 정책의 본질보다는 ‘겉모양’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에서 소신행정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인철<이슈부>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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