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항 도피3년 행적]싱크대밑 6천만원 수표 추적겁내 못쓴듯

  • 입력 2001년 4월 26일 18시 30분


《25일 검거된 박노항 원사(50)에 대한 군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의 3년간에 걸친 도피행각의 윤곽이 차츰 드러나고 있다. 국방부 검찰단은 26일 그가 도피생활 내내 국방부에서 자동차로 불과 10분 거리인 동부이촌동 현대아파트에 은신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도피시작〓박 원사는 자신과 같이 병역비리 브로커 역할을 한 원용수 준위에 대한 수사로 자신의 처지가 위험에 빠진 순간부터 도피를 결심했다. 군 검찰은 박 원사가 처음에는 이 아파트 같은 동 6층에 전세 들어 살았다고 밝혔다. 이 집에 대한 전세계약일은 98년 5월 27일. 그에 대한 공개수배가 시작된 시점이다.

아파트 계약과정에 대해서는 박 원사와 누나 복순씨의 진술이 다소 엇갈렸다. 복순씨는 “동생이 아파트를 물색한 뒤 다른 남자를 통해 전화로 전세계약을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진술했지만 박 원사는 “내가 가성으로 전화를 했고 다른 사람에게 전화해줄 것을 부탁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

이에 대해 복순씨는 “내가 동생목소리도 못 알아 듣겠느냐”고 반문해 복순씨의 말이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수사관들은 판단하고 있다. 이는 제3의 인물이 박 원사의 도피행각을 도와주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세금 9000만원은 모두 박 원사의 돈으로 지불됐다.

6층에서 11층으로 이사한 것은 지난해 2월. 6층 집 주인의 아들이 미국에서 귀국하기 때문에 집을 비워달라는 집주인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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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생활〓박 원사는 도피기간 중 오전 6시에 일어나 EBS의 외국어방송을 청취하며 영어공부를 열심히 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성경책을 읽거나 그 내용을 대학노트에 베껴 쓰기도 했다는 것.

도피생활 초기에 박 원사는 오전 4시반이면 일어나 한강둔치에 나가 운동을 열심히 했지만 포위망이 좁혀오는 것을 안 뒤 출입을 일절 삼갔다. 집안에서는 단전호흡으로 건강을 유지했다.

집에는 아예 전화가 없었고 휴대전화도 사용하지 않았다. 세금을 내주고 음식을 배달하거나 약품 등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것도 모두 복순씨의 몫이었다.

여자옷과 화장품 등이 많이 발견된 것은 복순씨가 여자가 없으면 사람들이 수상하게 여길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자기 옷가지를 갖다 놓았던 것이라고 한다.

군검찰은 박 원사가 최근에는 제3의 도피처로 충북 제천과 충남 장항쪽을 물색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군검찰은 또 박 원사가 초기를 제외하고는 철저히 은둔생활을 했으며 여장(女裝)을 하고 외출했다는 보도는 추측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도피자금〓군검찰은 26일 박 원사의 도피자금 중 6000만원의 수표와 800만원의 현금을 찾아냈다. 전세보증금이 1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 도피자금 규모는 최소한 1억7000만원 이상은 되는 셈.

수표는 대부분 97년과 98년에 발행된 것들로 그동안 현금으로 교환하지 않은 것은 추적을 두려워했던 탓으로 보인다. 수표는 안방 담요 밑과 싱크대 밑바닥 등에서 발견됐다.

▽형과 누나집 주변〓박 원사의 형 노덕씨(63)가 살고 있는 충남 서천군 마서면 어리 주민들은 26일 한결같이 “박노항이라는 사람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혼자 집을 지키고 있던 박씨의 부인(60)은 “시동생(박노항)과는 3, 4년 전부터 연락이 두절된 상태여서 남편이 항상 걱정해 왔다”며 “그동안 무얼 하고 지냈는지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또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 건영아파트에 살고 있는 누나 복순씨는 25일 밤 군검찰의 조사를 받은 뒤 이날 오전 귀가했으나 취재진의 접촉시도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복순씨와 평소 접촉이 있는 이 아파트의 한 주민은 오후 4시경 복순씨의 집에 들어갔다 나온 뒤 “완전히 탈진상태”라며 “계속 울기만 하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제대로 말도 못한다”고 전했다.

<하태원·김정안기자·서천〓이기진기자>scoo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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