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장애 역경딛고 美정책보좌역 오른 강영우교수

  • 입력 2001년 4월 15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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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으로 미국 대통령의 장애인정책보좌역(차관보급)으로 내정된 강영우(姜永祐·57·미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교수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다. 언뜻 보아서는 시각장애인임을 알지 못할 정도였다.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 초청으로 부활절 기념 강연차 내한한 그와 인터뷰가 이뤄진 것은 이튿날인 14일 밤, 그가 묵고 있는 서울시내의 한 호텔방에서였다. 13일 도착하자마자 이곳 저곳으로 바쁘게 움직였지만 그는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는 힘이 넘쳤으며 모든 질문에 막힘 없는 열정적인 달변이 나왔다.》

―한국에는 자주 나오시나요.

“매년 한두번씩 왔습니다. 미국에 적(籍)을 두고 있긴 하지만 한국 일도 계속 하고 있으니까요.”(그는 서울에 본부를 둔 국제 교육재활교류재단을 92년 창설, 회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대전 대성학원 이사장이기도 하다)

―부시 행정부에서 맡은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장애인 관련 모든 정책을 입안해 대통령과 의회에 보고하는 일입니다. 제가 팀장격이고 자문위원이 15명입니다. 이번에 백악관에서 추천서에 ‘강박사는 장애를 긍정적인 자산(positive asset)으로 변형시킨 사람’이란 표현을 썼더군요.”

―장애는 ‘남과 다른 특성일 뿐’이라고 말씀해 오신 것과 통하는군요.

“하하하. 그래요. 잃은 것이 있다면 얻은 것이 있답니다. 나는 시력을 잃었기 때문에 훌륭한 아내와 아이들을 얻었습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마음의 눈’을 얻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고요.”

―그렇게 받아들이기까지 고통의 시간이 많았을 텐데요.

“비가 오면 억수같이 퍼붓는다는 말이 있지요. 열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듬해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공에 맞아 시력을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2년 뒤 화병으로 돌아가셨고 하나 있는 누이마저 공장일로 과로하다 세상을 떠났고요. 여러 번 자살하려고 했지요. 그러다 한 목사님의 도움으로 ‘갖지 못한 한 가지를 불평하기보다 가진 열 가지를 감사하자’고 마음을 고쳐 먹으니 삶이 달라지더군요.”

―미국에서 힘든 일도 많으셨을 텐데요.

“연세대 문리대(교육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하고 72년 미국 피츠버그대로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3년반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졸업만 하면 강단에 설 수 있다고 믿었는데 미국도 한국도 받아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열심히 노력한 결과 이듬해(77년) 1월 인디애나주 교육국 특수교육부에 일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2년 뒤 일리노이대에 정착했고요.”

―아들 둘을 훌륭하게 키워 내셨는데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독특한 가르침이 있으십니까. (큰아들 진석씨(28)는 하버드대 의대를 나와 현재 듀크대학병원 안과 전공의이며 둘째 진영씨(25)는 듀크대 법대 대학원에서 다음달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입법보좌관으로 일할 예정)

“진정한 교육은 지식과 마음과 신체의 삼위일체여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마음교육, 즉 심력(心力)교육이 약합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3명 중 1명이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보다 머리가 좋다기보다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심력이 강하다고 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늘 ‘포기하지 말아라’ ‘자신감을 가져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장애를 이겨내는 아버지의 삶 자체가 살아 있는 교육이었던 같아요.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장애인 정책에 대해서도 그는 ‘심력’ 정책을 강조했다.

“장애인을 가장 위축시키는 것은 사회적 시선입니다. 복지시설이나 첨단기기 활용도 좋지만 한국은 너무 여기에만 치중해 있지요. 미국의 장애인정책이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장애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는 가치관이 사회 전체로 퍼져 있기 때문에 신체의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사회적 불평등을 받지는 않지요.”

인터뷰 내내 강교수 옆에 있던 부인 석은옥씨(58·현재 인디애나주 장애인 특수 교사)는 “아들 하나 더 키우는 심정으로 내조하신 것 아니냐”고 기자가 무례한 농을 던지자 “아이고, 교수님은 너무 자신만만한 게 흠”이라며 웃어 넘겼다. 강교수는 25일까지 한국에 머문다.

<허문명·박민혁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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