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리멤버 타이탄>,그라운드에 흑백은 없다

  • 입력 2001년 4월 5일 18시 35분


우리말로 옮기면 ‘타이탄들을 기억하라’쯤 될 ‘리멤버 타이탄(원제 Remember the Titans)’은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그러나 내용은 어느 영화보다 드라마틱하다.

전 미국이 인권운동으로 홍역을 앓던 1971년 알렉산드리아시는 흑백 갈등을 완화시킬 목적으로 백인학교와 흑인학교를 통합시킨다. 이 지역의 자랑인 T C 윌리암스 고교의 미식축구팀 타이탄스(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거인신을 뜻함)도 흑백 선수가 뒤섞인 팀이 된다.

힘자랑하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한 덩치들에게 흑백 갈등의 불씨까지 떠안긴 타이탄스는 시한폭탄 같은 팀이 된다. 여기에 원래 타이탄스를 이끌던 백인감독 빌 요스트(윌 패튼)가 코치로 밀려나고 흑인인 허만 분(덴젤 워싱턴)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백인사회는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새 감독은 “나는 흑인도 백인도 아닌 미식축구 감독이다. 내게서 민주주의를 기대하지마라. 오직 독재만 있을 뿐”이라고 외치면서 선수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고간다. 개인플레이만 펼치던 선수들은 결국 생존(?)을 위해 몸으로 팀웍을 익히고 점차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감독에서 코치로 밀려난 요스트는 승부 근성이 투철한 허만의 든든한 후원자가 돼주고 결국 땀과 눈물로 맺어진 타이탄스는 15연승이란 놀라운 결과를 통해 알렉산드리아 시에서 인종갈등을 추방한다.

영화속 두가지 코드, 미식축구와 흑백갈등은 철저히 미국적인 것이다. 미식축구가 미국인들에겐 일종의 제식(祭式)과도 같이 신성한 것이라면 흑백 갈등은 그들의 영혼에 낙인처럼 찍힌 치욕스러운 상처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를 통해 그들이 가장 감추고 싶어하는 상처를 치유해낸 기적은 보편적 감동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하다.

덴젤 워싱턴과 윌 패튼, 두 주인공은 오늘날 상업 스포츠에서 찾기 어려운 고전적인 영웅상을 보여준다. 링컨의 명연설이 있었던 게티스버그의 묘역에서 덴젤 워싱턴의 연설은 이를 힘차게 증언한다.

“여기서 죽은 5만명의 증언이 들리는가. 내 원한이 형제를 죽였고, 내 증오가 가족을 파괴했다. 죽은 자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다면 여기서의 비극은 다시 반복될 것이다.”

‘더 록’, ‘콘 에어’ 등 철저히 대중적인 흥행대작을 만들어온 제리 브룩하이머 사단에서 제작, 미국에서 1억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올렸다. 14일 개봉. 12세이상 관람가.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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