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경제경영신서] '그린스펀의 말, 말, 말'

  • 입력 2001년 3월 28일 10시 44분


"그는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우리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줍니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우리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향해 나가는데 커다란 도움을 줬습니다. - 미 대통령 빌 클린턴"

◇ 그린스펀의 말, 말, 말

- 세계를 흔들 수 있는 한 남자의 어록

The Quotations Chairman Greenspan by Larry Kahaner, Adams Media Corporation, 2000.12, 240pp

◇ 저자

래리 카하너는 작가이자, 강사, 비즈니스 컨설턴트이다. 그의 저서들은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며 이 달의 책 클럽(Book-of-the-Month Club)에 선정되기도 했다. 각 대학뿐만 아니라 국제 품질 & 생산성 센터(the International Quality and Productivity Center), 육군 정보 기관(National Military Intelligence Association), 경찰 기술 & 경영 연구소(the Institute of Police Technology & Management)에서 각종 세미나와 워크숍을 주관해오고 있다. 저서로는 《경쟁적 정보 Competitive Intelligence》, 《비즈니스의 탈무드 방식》이 있으며 현재 버지니아에 살고 있다.

◇ Short Summary

연방 준비은행장 알랜 그린스펀은 자신의 말 한마디에 극도로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그가 무심코 꺼낸 말 한 마디가 금융 시장에 여파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케네디 센터를 방문한 그린스펀은 미 증권 거래 위원회 위원장 아더 레빗을 만났다. 아더 레빗이 "앨런, 요즘 어떻게 지내요?"라고 묻자 그린스펀은 농담으로 말한다. "그것도 말하면 안돼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경제 흐름의 한가운데서 알랜 그린스펀은 수조 달러가 운용되는 경제를 효율적으로 조율하며 잉여와 방어의 시대를 안내하고 있다. 이 책은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말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남자가 그 동안 해왔던 가장 명확하고 의미심장한 말들을 모두 담고 있다.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연설, 공공연한 의사표명, 인터뷰 등에서 그린스펀이 했던 말들을 모아 분석한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비즈니스와 투자 결정에 있어서 이 시대 최고의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그린스펀은 누구인가?

한 경제학자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화 배우들, 록 가수들과 동등한 이 시대 최고의 수퍼스타가 될 거라고 어느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얼굴엔 반점이 있고 올빼미같이 생긴 74세의 그린스펀은 소위 워싱턴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힘을 지닌 사람이다. 무엇이 그에게 그토록 강한 힘을 부여할 수 있었을까?

롤링스톤의 표지를 장식하는 미끈미끈하고 일상을 벗어난 표지인물들과 달리, 그린스펀은 자신의 업무와 성과에 대해 과묵하고 매우 겸손하다. 그의 정직성, 사고, 친절함 때문에 그와 친해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그린스펀은 결코 매력적이지 않은 경제의 한 분야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로부터 나오는 조심스럽게 선택된 말들에 시장이 좌지우지되는 요인은 무엇일까? 정치적 성향에 상관없이 그의 주위에 있는 정치인들이 왜 그의 카운슬링을 구하는가? 인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의회조차 왜 그의 말에 매달리는가? 도대체 알랜 그린스펀은 어떤 사람인가?

알랜 그린스펀은 1926년 뉴욕 워싱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주식 브로커였으며 그가 소년일 때 그의 부모는 이혼했다. 음악과 수학에 재능을 보인 그린스펀은 줄리아드 음대에서 색소폰과 클라리넷을 전공하지만 곧 싫증을 내고 19세에 뉴욕 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한다. 뉴욕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마친 그린스펀은 콜럼비아 대학으로 학교를 옮기고 그곳에서 후일 연방 준비 은행장을 역임(1970-1978년)하는 아서 번즈를 만나 친구가 된다. 콜롬비아에 있는 동안 화가 조안 미첼과 결혼한 후 28세에 이혼을 한다. 경제적 사정으로 박사 과정을 그만 두고 윌리암 타운센드와 타운센드-그린스펀을 설립하여 경제 예측 컨설턴트 업무를 시작한 그린스펀은 포츈 500대 기업에 속하는 기업들을 고객으로 유치한다. 연방 준비 은행에서 경력을 쌓기 위하여 1987년 회사를 정리한 그린스펀은 그 당시 이미 영향력있는 부동의 예상 전문가로서 명성을 얻고 있었다.

1968년 그린스펀은 닉슨의 선거 본부에서 정책 조사 책임자로서 처음 정부와 관련된 업무를 접하게 되었고 그 해 대통령 경제 자문 위원장 자리를 제안 받았다. 그러나 그는 닉슨을 싫어했기 때문에 제의를 거절하고 1974년까지 다시 개인 사업에 전념했다. 닉슨이 사퇴하고 포드 정부가 들어서자 다시 그에게 위원장 제안이 들어왔고 이번에는 이를 수락함으로써 1977년까지 대통령 경제자문 위원장을 지내게 된다.

이후 다시 타운센드-그린스펀으로 돌아간 그는 이미 경제 분야에 있어 텔레비전 및 각종 미디어에 출연 제안을 받는 유명인사가 되어있었다. 1981년 1983년 사이 그린스펀은 초당파적인 사회 보장 개혁 위원회 위원장으로 모두가 만족하는 개혁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정치적 스타로서 점점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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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코스모스 경제 경영팀 (pipal73@bookcosm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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