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서울 하늘 숨막힌다]오염운반체 황사

  • 입력 2001년 3월 27일 18시 52분


해마다 봄이 되면 서울 하늘을 뿌옇게 뒤덮는 황사. 수천년 전부터 계속되어 온 자연현상이지만 최근 10여년 사이에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끌게 된 이유는 중국의 공업화 때문이다.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는 공장지대에서 배출된 각종 오염물질이 황사에 실려 한반도로 날아오는 것.

‘모래먼지’ 정도로만 생각했던 황사가 이제는 ‘오염물질의 운반체’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황사는 오염물질의 장거리 이동현상을 보여주는 좋은 지표다. 대기오염은 특정국가, 특정지역의 차원을 넘어 바람의 흐름을 따라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세계 10대 오염도시 중국 5~9곳▼

▽최근의 황사=중국의 대기는 심각한 상태다. 최근 몇 년간 각종 환경관련 기구가 선정하는 세계 10대 오염도시에 중국의 도시들이 적게는 5곳, 많게는 9곳이 포함될 정도다.

따라서 아황산가스, 일산화탄소 등 서울에서는 오염도가 많이 낮아진 오염물질들이 황사 표면에 들러붙어 유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최근엔 황산화물(SOx)이나 질소산화물(NOx)이 많이 검출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어 산성비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연재순서▼

- 1. 사람잡는 대기 오염
- 2. 생태계도 변했다
- 3. 오염운반체 황사
- 4. 공기는 돈이다
- 5. 숨쉴수 있는 공기를

사실 황사 자체의 성분은 일반토양과 거의 같다. 규소 알루미늄 철 등이 주요 성분. 하지만 인체에 해로운 중금속인 납 카드뮴 아연 구리 성분도 들어 있다. 지난해 부산 부경대의 옥곤(玉坤)교수팀은 황사가 지난 뒤 부산 대기 속의 다이옥신 농도가 황사가 오기 전에 비해 3배 가량 높아졌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90년대 이전에는 황사가 3∼5월에 두세차례 관측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1년에 5차례가 넘을 때도 있다. 지난해에는 6차례나 발생했다. 그렇다고 황사가 꼭 증가세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94년에는 한번도 관측되지 않았을 정도로 들쭉날쭉한 것.

기상청 예보관리과의 전영신(全暎信)연구관은 “황사를 일으키는 기류의 진행 방향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며 “13일 중국에서 발생한 황사를 위성으로 파악, 전국에 예보했지만 실제로는 황사가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황사의 폐해=황사가 서울을 뒤덮었던 21일 최미선(崔美仙·28·서울 도봉구 창동)씨는 두살배기 아들이 갑자기 숨을 가쁘게 물아 쉬며 기침을 계속해 크게 놀랐다. 동네 소아과에 갔더니 같은 증상으로 아이를 데려온 엄마들이 여럿 있었다.

의사들은 황사가 온 뒤 며칠 동안은 이런 어린이 환자가 평소보다 15∼30% 는다고 말한다. 호흡기질환을 앓는 환자가 아니더라도 신체기관이 채 성숙하지 않은 어린이는 지름 1∼10㎛(1㎛는 100만분의 1m)의 미세한 황사 알갱이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

또 황사는 시민들의 체감오염도를 급속히 높인다. 대기 중 떠다니는 먼지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 서울 상공의 먼지의 총량(TSP)은 지난해 하루평균 72㎍/㎥(1㎍은 100만분의 1g)이었지만 지난해 3월 23, 24일 황사가 왔을 때는 1016㎍/㎥을 기록하기도 했다.

따라서 시정(視程)도 짧아질 수밖에 없다. 봄철 서울의 시정은 평균 10㎞ 정도. 하지만 황사가 심한 경우 시정은 4㎞ 이하로 뚝 떨어진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북악산 자락의 청와대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다.

▽황사의 새로운 문제=전영신 연구관은 “최근 황사현상은 80년대 미국―캐나다간에 벌어졌던 5대호 지역 산성비 논쟁의 동북아시아판”이라고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황사를 통한 오염물질의 장거리 이동현상이 한국과 중국 사이에 국가간 분쟁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국립환경연구원 한진석(韓振錫)대기화학과장은 “황사에 대해 섣불리 중국의 책임을 묻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각국의 오염물질 배출량 등 기초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장기적인 관찰과 분석을 하는 것이 순서”라고 강조했다.

사실 황사가 언제 얼마나 많은 양의 오염물질을 어떻게 실어 오는지에 대한 장기연구는 아직 국내에 없다. 게다가 황사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일관된 해답이 없다.

실례로 올해 황사에 대해선 두 가지 상반된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9일 대구보건환경연구원은 황사가 지나간 뒤 대기 중 중금속 함유량이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22일 환경부는 황사 이후 중금속의 대표격인 납의 대기 중 농도가 오히려 연중 평균치보다 낮아졌다고 밝힌 것.

▼일본 80년대초부터 기초자료 정리▼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오는 오염물질에만 관심을 집중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의 흐름을 따라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도 상당량 된다는 것이다.

연세대 화학과 이동수(李東洙)교수는 “황사현상이 상당히 드문 일본이 이미 80년대 초부터 황사에 대한 정밀연구를 시작해 20여년치 자료를 정리해놓은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염물질 장거리이동 조사▼

황사로 대표되는 장거리이동 오염물질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협력은 이제 걸음마단계다. 과거 중국은 황사대책을 물을 때마다 “오염물질을 싣고 있다는 것은 한국의 주장일 뿐 신뢰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여 오다 99년 1월 한국 중국 일본 3개국 환경장관회의 이후 다소 전향적으로 바뀐 것.

그 해 9월 시작된 ‘동북아 대기오염물질 장거리이동 공동조사’사업이 그 첫걸음. 한중일 3개국이 참여해 2004년까지 계속되는 이 작업의 주요목적은 산성비 원인물질의 이동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사업의 1단계는 지난해 8월까지 3개국의 대기오염농도와 오염물질배출량 등 기본자료를 수집 교환한 것. 2단계는 지난해 8월 제주 고산과 인천 강화군에 측정소를 설치하고 관측을 시작해 올 8월에 그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국제적으로도 황사에 대한 관심은 최근 대단히 높아졌다. 98년 4월 중국에서 발생한 황사가 미국 서해안에 이른 것이 관측되면서부터다. 그 영향으로 국제지구대기화학(IGAC) 프로그램이 주관하는 ‘에어로솔 공동관측 프로젝트’가 3월23일 제주 고산 슈퍼관측소에서 시작됐다.

미국 호주 일본 등 12개국 30개 연구팀이 참가한 이 프로젝트는 위성 항공기 선박 등을 동원해 동북아지역의 에어로솔(aerosol·입자상 부유물질)을 관측한다. 특히 황사 입자크기의 분포와 화학적 조성, 발생과 장거리 이동특성 등을 규명한다.

민간단체들의 협력도 활발하다. 한국 일본 중국 몽골 홍콩 대만 러시아 등 7개국 비정부기구(NGO)는 95년 동아시아대기활동네트워크(AANEA)를 구성했다. 이들은 매년 한차례 회동, 각국의 대기오염 자료를 교환하며 장거리이동 오염물질을 줄이는 방법도 구상한다.

▽기획취재팀▽

<하종대·민동용 기자>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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