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與世長辭(여세장사)

  • 입력 2001년 3월 22일 18시 40분


산다는 것, 그것도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原初的(원초적)인 本能이다. 또 하나의 本能인 먹는 문제 역시 따지고 보면 살기 위해 인간이 취하는 일종의 수단이 아닐까?

그래서인가? 東西古今을 통해 수많은 先人들이 이를 위해 처절한 노력을 경주해왔다. 중국 사람들 역시 그 어느 民族보다 삶에 대해 집착한 결과 죽음을 쉬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집착에 전기를 가져오게 한 것은 秦始皇(진시황)의 죽음이었다. 다 알다시피 不老長生을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결국은 還甲(환갑)도 못 넘긴 50의 젊은(?) 나이로 ‘夭折’(요절)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중국 사람들로 하여금 ‘人命은 在天’이라는 진리를 刻印(각인)시켜준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누구나 맞는 죽음이지만 여러 가지가 있다. 司馬遷(사마천)에 의하면 泰山(태산)같이 위엄을 갖춘 죽음이 있는가 하면, 새의 깃털보다도 더 가벼운 죽음도 있다. 그런데 그것은 자기 하기 나름이 아닌가. 남자로서 치욕적인 宮刑(궁형)을 당한 뒤 自殺을 결심했지만 문득 터득한 진리에 화들짝 놀라 단념했다. 그것은 ‘아홉 마리의 소 중에서 털 하나’를 뽑아버린 정도의 하찮은 죽음이 될 것인즉 동정은커녕 비웃음의 대상이 될 것인데 명예는 그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유명한 ‘九牛一毛’의 이야기다. 불후의 名作 史記는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죽음이 여러 종류가 있듯 그것을 표현했던 방법도 여러 가지였다. 天子의 경우야말로 앞에서 말한 泰山같이 위엄을 갖춘 죽음이라고 보아 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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