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훈기자의백스테이지]언더 밴드는 힘이 세다

  • 입력 2001년 3월 21일 13시 46분


'언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요계의 아웃사이더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언더 밴드들은 '힘이 세다'는 것. 여기서 말하는 힘이란 음악에 대한 열정 혹은 고집을 의미한다.

'CB Mass'나 '넬'처럼 비교적 안정적인 기획사를 통해 음반을 발매한 팀도 있지만 대부분의 인디 밴드들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이들의 음악을 알리고 있다. 아는 선배에게 악기를 빌려 연습실에서 녹음을 하고 5000장 내외의 음반을 만든다. 홍보라고 해봐야 소규모 클럽 공연에 대형 음반 매장 구석의 인디 레이블 코너가 고작이어서 큰돈을 만지기란 요원한 게 현실이다.

기성 가요계에서 100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와 CF 출연 등으로 준 재벌이 된 스타들과 비교한다면 이들은 '기층민'이라 불릴 만도 하다. 그렇다면 소수의 마니아들 앞에서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비주류 뮤지션들의 실생활은 어떨까?

언더밴드들은 고정적인 수입원이 없다. 클럽 공연 소득이라고 해봐야 멤버들의 생활비하기도 빠듯한 액수여서 아르바이트가 필수 조건이다. '불독 맨션'은 세션맨 활동을 벌이고 '레이니 선' 멤버들은 특례병 월급과 개인 레슨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레이니 선'의 보컬 정차식은 이렇게 말한다. "오랫동안 활동을 하면서 개성있는 음악을 만들어 냈다는 것에 만족한다. 하지만 데뷔했을 때나 지금이나 주변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우리의 인지도는 여전히 낮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벌써 전업을 했을지 모른다."

생활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언더 밴드 대부분은 '뚜벅이'다. 멤버 개개인이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관계로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고급 밴 승용차에 담당 코디네이터를 둔 일부 스타들이 상습적으로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 언더그룹 멤버는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편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를 이렇게 몰라 주나 하는 서운함도 느낀다"며 "그래도 공연장에서 우리 음악을 들으며 몸을 흔들고 환호하는 팬들을 보며 위안을 삼는다"고 말했다.

기자는 한국 언더 뮤지션들을 만나오며 지난 90년대 초반 팝 시장을 뒤흔들었던 얼터너티브 록 밴드 '너바나'를 떠올렸다. 미국 시애틀의 작은 클럽에서 활동하던 이 밴드가 팝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기존의 주류 질서를 깨려했던 도전 정신'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우리네 언더 밴드들 역시 기성 가요와는 차별화된 사운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너바나'를 기대케 한다. 그 세력이 미약하다 해도 언더 밴드들의 개성있는 음악은 댄스와 발라드로 도배된 가요시장의 전복자로 등장할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비록 배고픈 나날이지만 이들의 음악적 열정이 계속되길 바란다. 언더는 힘이 세고, 그 힘은 우리 가요 시장의 경쟁력을 높히는 원동력이기에.

황태훈 <동아닷컴 기자>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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