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민병욱/함정취재

  • 입력 2001년 3월 18일 19시 12분


한두 세기 전만 해도 언론의 공직자 비판은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정치 선동적 명예훼손죄’ 같은 걸 들이대 언론에 재갈을 물렸기 때문이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옵저버지를 발행하던 존 터친이 “정부가 부패한 관리를 기용하고 있으며 황금이 국가 지도자들에 대한 뇌물로 사용된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은 ‘죄’로 기소됐다. 재판장은 터친씨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며 “정부가 나쁜 견해를 가진 사람을 고용한다는 이유로 국민이 비난한다면 어떤 정부도 유지될 수 없다”고 일갈했다.

▷재판장은 특히 “부패한 관리가 행정에 종사한다는 표현은 확실히 정부를 비난한 것”이라며 “정부의 운영에 증오감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글을 공표하는 것은 가장 나쁜 짓”이라고 단언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황당한 얘기다. 그렇지만 이런 판결들이 쌓이고 쌓여 그 반발로 언론의 자유는 조금씩 신장돼 왔다. 오늘날에는 ‘선량한 동기에서, 정당한 목적을 갖고 행한 진실된 비판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이른바 ‘해밀턴 원칙’이 대정부 언론 비판의 정당성을 뒷받침해 준다.

▷최근 인도에서 테헬카 닷컴이란 인터넷 뉴스포털이 기자를 군납업체 직원으로 위장시켜 고위층에 뇌물을 주고 그 장면을 몰래 카메라로 찍어 방영한 사건이 일어났다. 연립정권의 제1당 당수가 군납 계약 성사 대가로 돈다발을 받아 태연히 서랍에 넣는 모습을 인터넷에서 본 인도 국민은 경악했다. 야당이 들고일어났고 결국 당수는 사임했으며 정정은 매우 불안해졌다. 테헬카 닷컴으로서는 쾌재를 불렀을 법한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부정직한 함정 취재 역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테헬카측이 뇌물 전달 장면을 인터넷에 유료로 띄워 큰 돈을 번 것이 알려지면서 돈벌이 욕심으로 함정 취재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선량한 동기’가 의심받게 된 것이다. 물론 테헬카는 “지도층에 만연한 군납 비리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고 항변하고 있다. 지도층 비리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기자를 군납업자로 위장시키면서까지 뇌물 관행을 파헤치려 했을까 싶다. 다만 취재 방법과 보도 경위 역시 흠 잡힐 데 없이 떳떳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민병욱논설위원>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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