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이태리 요리를 먹는 여자' '아주 사소한 중독'

  • 입력 2001년 3월 16일 19시 06분


◇이태리 요리를 먹는 여자/송혜근 소설집/300쪽, 7500원/생각의나무

◇아주 사소한 중독/함정임 중편소설/102쪽, 5500원/작가정신

여성과 욕망은 대중문화와 문학이 즐겨 다루는 테마 중의 하나이다. 현대소비문화에서 여성은 물신숭배의 이미지에 유혹당하는 감성적인 존재로 형상화되곤 한다. 물론 광고와 드라마에서 탐욕스러운 소비의 주체로 부각되는 여성 이미지의 뒤편에는 허위적 일상의 권태로움이 자리한다.

최근 출간된 함정임과 송혜근의 소설은 이러한 탈일상의 충동과 여성존재의 위기감을 감각적 욕망이라는 화두로 풀어내 주목된다. 이들의 소설은 여성을 매혹하는 동시에 좌절시키는 육체와 상품의 이미지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함정임의 신작 중편인 ‘아주 사소한 중독’은 실연의 상처를 통해 여성이 느끼는 정체성의 흔들림을 예민하게 묘사한다. 케이크 디자이너인 여자와 대학강사인 남자는 파리의 뒤라스 묘지에서 처음 만난다. 서울에서 재회한 이들은 곧 사랑에 빠진다. 이들은 연애라는 시소게임에서 끊임없이 서로를 지배하려고 한다. 남자는 지식의 기표를 통해 여자를 소유하려 하고 여자는 식욕의 기표를 통해 남자를 소유하려 한다. 여자는 케이크를 정신없이 먹는 남자의 모습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며, 남자는 사사건건 문자메시지를 보내 여자의 행동을 제약한다.

결국 이들의 관계는 뒤틀려가고 실연의 고통은 여자에게 실성증(失聲症) 이명증(耳鳴症)이라는 정신적인 내상을 남긴다. 여자는 또 다른 ‘혀의 사랑’으로 이명증이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 자위한다. 지식과 허위적 관습에 맞서는 ‘혀의 감각’은 본질적인 고독을 감내해야 하는 존재의 고통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함정임 소설이 지식욕, 식욕, 성욕의 코드를 통해 여성의 욕망을 들여다본다면 송혜근의 첫 작품집인 ‘이태리 요리를 먹는 여자’는 ‘앤틱’이라는 문화적 기호를 내세운다. 여섯 편의 단편소설들에는 앤틱에 심취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호두나무 식기장과 실크카펫, 루이15세 스타일의 장미나무 테이블을 구입하고 쓰다듬으며 행복해한다.

앤틱의 취미와 식도락의 즐거움은 사회생활로부터 격리된 여성을 위로하는 유일한 마취제이다. 여성들은 그라빠와 야생버섯요리를 통해 권태와 모욕을 견디며(‘이태리 요리를 먹는 여자’) 복고풍 핸드백으로 포장된 우아한 자신의 모습 속에서 사랑의 고통을 애써 망각한다(‘행복, 머무르지 않는’). 이처럼 미학적인 스타일을 전시하며 스스로를 포장하는 댄디스트들이야말로 송혜근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들이다. 이들의 댄디즘은 사랑의 정치학에서 배제되는 여성존재의 고통을 위로하는 가치관이다.

함정임과 송혜근의 소설은 감각의 기호를 통해 여성존재가 일상에서 느끼는 위기감을 세심하게 포착한다. 여성들은 실연의 고통을 ‘혀의 감각’으로 위무하며, 앤틱 소품을 통해 고통의 기억을 망각한다.

그러나 감각의 기호는 쾌락적 본능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나르시시즘의 고독을 가져온다. 달콤한 케이크, 부드러운 캐시미어 스웨터, 우아한 문양의 찻잔 속에서 여성들은 현실을 잊고 환각에 휩싸인다. 미학적 수집품 사이를 배회하는 여성 나르시시스트들의 모습은 내면적으로 소외된 현대인의 일면을 암시하는 징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백지연(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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