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사커서핑]'한국형' 테크니션들

  • 입력 2001년 3월 5일 17시 40분


국가대표팀을 소집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선수가 있다. 바로 윤정환 선수이다. 볼을 다루는 기술과 감각적인 스루패스, 경기를 읽는 능력은 국내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뛰어난 공격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이다. 그러나 이선수는 이상하게도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다. 비쇼베츠 감독의 올림픽팀에서는 최용수와 호흡을 맞추어 발군의 기량을 발휘했었지만, 그 이후에는 차범근 감독이나 허정무 감독을 거쳐 오면서 - 물론 선수 개인의 부상으로 인한 공백도 있었지만 - 대표팀에 쉬이 들어가지 못하였다. 아직도 아틀란타 올림픽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우리 국가대표팀이 답답하게 경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보면 '윤정환이를 왜 안 넣는거야' 하며 그를 아쉬워한다.

K-리그에는 아예 별명이 '테크니션' 이었던 선수가 있었다. 바로 전남 드래곤즈에서 뛰다가 지금은 J-리그 오이타로 이적한 최문식 선수이다. 이 선수는 진짜 자타가 공인하는 진짜 테크니션이었다. 실제로 경기 중에 클루이프턴과 사포를 해 낼 수 있는 사람이 K-리그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정말 놀랐던 적이 있었다. 볼을 가지고 한두 명은 쉽게 제쳐내는 개인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역시 대표팀과는 별 인연이 없었다.

대전의 이관우 선수 역시 발재간 하나는 다른 어떤 선수에게도 지지 않는다. 소위 볼을 예쁘게 차는 부류인 이관우 선수는 지금까지 10m 트래핑만 해오던 선수들만 보며 한탄하던 사람들이 본다면 정말 좋아할 가장 전형적인 선수이다. 특히 그의 빨랫줄 같은 중거리슛은 세계 어떤 선수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정신적인 면이 조금 떨어지고, 사고와 부상으로 아직까지 정상 컨디션을 찾고 있지는 못하지만 공을 '잘' 차는 대표적인 선수임에는 분명하다.

지금까지 열거한 세 명의 선수들은 공통점들이 있다. 모두 자타가 공인하는 '테크니션' 이란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다는 점, 그리고 많은 축구팬들이 대표팀이 구성될 때마다 왜 이 선수가 들어있지 않느냐며 항의한다는 점이 바로 공통점이다.

히딩크 감독 체제에서 '황태자'란 칭호까지 받으면서 부동의 왼쪽 공격라인을 맡게 된 고종수 선수 역시 위에서 언급했던 세 가지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에 와서는 히딩크 감독의 눈에 띄어 양지로 드러나 있을 뿐,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종수 선수 역시 위의 세 선수와 다를 바 없는 - 개인기량은 좋으나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고, 팬들은 좋아하나 감독들은 쓰길 주저하는 - 그런 선수였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 세 선수들이 공을 참 '잘' 찬다는 것은 축구계건 언론이건 축구팬이건 모두 다 동감하는 사항이다. 그렇다면, 당대에 가장 축구에 대해서 많이 아는 사람들이 맡기 마련인 국가대표 감독들은 왜 이 선수들을 뽑지 않는 것일까? 한국대표팀이 공격을 할 때 이리저리 허둥대는 꼴을 보면 위에서 열거한 선수들을 집어넣으면 정말 잘할 것 같은데 왜 감독들은 이들을 뽑지 않는 것일까? 왜 국가대표팀 감독들은 이들을 뽑아서 활용하기를 주저하는 것일까?

한자성어를 보면 '계륵'이란 말이 있다. 닭의 갈비를 뜻하는 말인데, 쓰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바로 이 계륵 같은 경우가 위에서 언급했던 소위 테크니션들의 경우와 흡사하다. 대부분 개인기량이 좋고 볼을 잘 차는 선수들은 공통적이라고 할 정도로 수비가담능력이 떨어지고 몸싸움을 싫어하며 체력이 뛰어나지 못한다. 윤정환 선수 역시 그의 가장 최전성기라고 할 아틀란타 올림픽에서 최윤열이라는 수비전용 미드필더가 있었기 때문에 공격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이고, 최문식 역시 전남에 둥지를 틀기 전에 포항에서 뛸 때는 하프타임용 교체선수의 역할 밖에 하지 못했다. 이관우 선수 역시 풀타임을 뛴 경기는 거의 없었고 교체 인/아웃을 주로 했었으며, 고종수 선수 역시 현재 측면공격수를 맡으면서 수비부담을 줄이고, 히딩크 감독에게 계속해서 수비가담능력을 키우라는 소리를 듣는 상황이다.

물론 이런 선수들의 체력 및 수비가담능력을 얘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너무 공격수들에게 수비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아니냐' '공격지향적인 선수가 있다면 그 뒤에 수비지향적인 선수를 두는 팀 전술적인 면에서 커버를 할 수 있지 않느냐' 라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를 들어 중앙에 미드필더를 둘 때, 공격 10, 수비 10의 능력을 가진 선수 두 명을 세우는 것과, 공격력이 뛰어나 15가 되지만 수비가 5밖에 안 되는 선수를 커버하기 위해 공격력 5, 수비력 15인 선수를 같이 세워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많은 지도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공격력 10, 수비력 10인 선수들을 선택한다. 어차피 두 선수의 공격력과 수비력의 합계는 20씩이지만, 두 번째의 경우는 너무나도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당장 공격전담과 수비전담을 한명씩 두는 형태의 전술은 이미 토탈사커가 세계적인 추세인 현 상황에서 전술의 활용도가 떨어지는 전술이 된다. 팀 전체가 경직되고 정형화된다는 소리이다. 또한, 축구라는 경기의 특성상 90분의 경기시간 동안에 수비력이 5인 선수가 뚫려서 위기를 맞을 상황이, 또 공격력이 5인 선수에게 결정적인 찬스가 났지만 무산시켜버릴 상황이 언제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쉽게 모험을 걸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실제 축구경기가 무슨 오락처럼 정확한 수치로 되는 경기는 아니지만, 실제 이런 영향들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정 선수 - 위에서 언급한 선수들의 예를 보더라도 - 를 위주로 하는 전술을 구현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과연 그 선수가 나머지 10명이 그 선수를 위주로 움직여야 할 만큼 뛰어난 선수인지'에 대해서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히딩크 감독 역시 중앙의 게임메이커를 두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단급의 선수가 있다면 당연히 지단을 위주로 하는 전술을 짤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수는 아직까지 한국에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윤정환 선수가, 고종수 선수가, 이관우 선수나 최문식 선수가 과연 국가대표팀의 전술 자체를 바꿀 만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일까? 만일 15의 공격력과 10, 아니 9정도의 수비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있다면 그를 쓰는데 주저할 감독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국가대표팀의 전술을 바꿀만한 가치를 가진 선수들은 절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가대표 감독들이 이 선수들을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한 결론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 한국에서 소위 '테크니션' 이라고 불리는 부류의 선수들은 아직까지는 자신의 공격력을 살릴 만큼의 다른 능력들이 아직 미흡하며, 자신의 단점까지 덮어버릴 정도로 공격력이란 장점이 뛰어나서 팀 전술 전체에 영향을 끼칠 만큼 훌륭한 선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아직까지 한국에서 테크니션이라고 불리는 선수들은 공은 잘 찰지 몰라도 축구를 잘 하는 선수는 아니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현재 세계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칭송 받는 지단이나 피구 같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유심히 살펴보자. 몸싸움이나 수비가담능력, 체력적인 문제 역시 정말 뛰어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본의 나카다 역시 절대 몸싸움에서 쉽게 밀리지 않는다. 오르테가 같이 체격조건이 떨어지는 선수 역시 그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니는 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계 최고 미드필더 중의 한명으로 평가 받을 수 있다. 이들은 이러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더욱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장점을 살리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장점만을 살리는데 앞서서 자신의 단점을 보완해 낼 수 있다면 그 선수의 장점은 보다 더 크게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단점을 알고 있다면 고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자신만의 장점이 있다지만 그만큼의 장점 역시 가지고 있는 선수는 반쪽 선수로 밖에 남지 못할 것이다. '지금 감독의 스타일은 나랑 안 맞어. 나의 축구는 이런 게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면서 포기해선 안 된다. 또, 국내의 이런 테크니션들을 활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감독을 무식쟁이에 뻥축구의 화신으로 매도하지 말고, 왜 이런 선수들을 감독이 중용하지 않을까를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면, 감독의 의중을 조금은 다른 면에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료제공 : 후추닷컴(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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