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어느 여권 교수의 해괴한 논리

  • 입력 2001년 2월 27일 19시 33분


정말 어처구니없는 궤변이다. 민주당 국가경영전략연구소 부소장인 황태연(黃台淵) 동국대교수는 어제 한 토론회에서 6·25전쟁과 87년 대한항공기(KAL) 폭파 사건에 대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무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황 교수는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앞두고 사회일각에서 6·25전쟁과 KAL기 폭파 사건에 대한 사과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을 겨냥하여 “6·25전쟁은 김 위원장이 유아시절 발발했기 때문에 그가 침략범죄의 용의자는 아니다”고 말했다. KAL기 폭파도 김 위원장이 지휘했다는 증거가 없고 조사할 수도 없는 사안이며 그것은 국제사법으로 다룰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황 교수의 이 같은 주장은 한마디로 그의 학자적 양식과 학문적 깊이를 의심케 할 뿐만 아니라 김 위원장의 답방을 앞두고 여권 주변에 혹시 황 교수의 주장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생성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갖게 한다. 황 교수는 여권의 싱크탱크에서 주요 역할을 해 온 인사이기 때문이다.

우선 황 교수의 주장대로 김 위원장은 6·25전쟁에 대한 책임이 없으므로 사과할 필요가 없다면 독일이나 일본의 총리는 2차세계대전을 직접 일으킨 전범도 아니고 벌써 세월마저 반세기나 흘렀는데 왜 여전히 피해국들에 사과하고 있는가. 황 교수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일제(日帝)침략의 장본인인 히로히토(裕仁)가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현 일본정부에 대해서는 책임을 따질 수도 없고 사과를 요구할 수도 없다는 얘기가 된다.

또 KAL기 폭파사건도 김 위원장이 직접 지휘했다는 증거가 없고 조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데 그러면 누가 그 같은 만행을 저질렀다는 말인가. 이 사건의 전모는 그동안의 증거와 증인에 의해 분명히 밝혀진 상태다. 김 위원장이 직접 지시한 일이 아니며 지시한 사람은 이미 죽었다 해도 그 책임은 분명히 북한 정권에 있다. 따라서 구태여 국제법상 핵심논리인 ‘동일성과 계속성의 원칙’을 따지지 않더라도 현재 북한정권을 이끌고 있는 김 위원장이 책임지고 사과해야 할 사안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 정권의 전비(前非)에 대해서는 언젠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으나 남북한간의 화해 협력을 위하여 당장은 크게 거론하는 것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차제에 분명히 밝히지만 아무리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문제라 해도 정략적 필요에 따라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하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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