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호표/'주류신문'과 미국독자들

  • 입력 2001년 2월 22일 18시 45분


미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E메일이 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그 친구에게 “혼자 보기 아깝다”며 건네 준 ‘미국의 신문독자’란 글이 들어 있었다. 그 친구 역시 ‘혼자 보기 아깝다’며 보내왔다. 내용은 이렇다.

①월스트리트저널은 현재 미국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본다.

②뉴욕타임스는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본다.

③워싱턴포스트는 자신들이 미국을 지배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본다.

④USA투데이는 자신들이 미국을 지배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워싱턴포스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본다.

⑤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짬을 낼 수만 있다면 미국을 지배해 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본다.

⑥보스턴글로브는 자신들의 부모가 미국을 지배하는데 익숙해 있는 사람들이 본다.

⑦뉴욕데일리뉴스는 누가 미국을 지배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

⑧뉴욕포스트는 뭔가 스캔들만 만들어 준다면 누가 미국을 지배하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이 본다.

⑨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은 미국이란 나라가 있는지조차 모르거나 미국을 지배하는 사람이 있기는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

⑩마이애미해럴드는 엉뚱한 나라를 지배하는 사람들이 본다.

이들 신문은 유력지거나 유명 대중지다. 전국지인 월스트리트저널과 USA투데이를 제외하고는 미국 사회의 특성상 ‘지역 신문’이다. 그러나 다루는 내용에 비춰 나머지 신문들도 실제로는 전국지 성격이 강하다. 이들 신문은 서로 색깔이 다르고 ‘격(格)’도 다르다. 따라서 독자의 격도 다르다. 신문의 패션 혁명을 선도한 USA투데이가 독자층과 정체성이 모두 불분명하다는 일부 평을 듣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신문은 각각 일정한 독자층을 대변한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을 필두로 워싱턴포스트 보스턴글로브 등은 퀄리티페이퍼로 통한다.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을 별개로 친다면 다 알다시피 뉴욕타임스가 으뜸으로 꼽힌다. 서부의 할리우드 영화산업 관련 기사라도 ‘중앙 차원’ 또는 오피니언 리더층의 반응이 중요한 경우에는 서부지역이 무시된 채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에만 ‘과점(寡占)보도’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 동부 중산층 이상 밀집 지역에는 아침에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가 함께 배달되는 가정이 많다. 미국을 ‘지배하고 있거나,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탓인 듯하다.

요즘 우리 사회에 ‘주류(Mainstream)’ 논쟁이 뜨겁다. 미국은 물론이고 어느 나라나 그 사회의 주류가 보는 신문이 따로 있다. 국내에도 뉴욕타임스와 제휴한 신문이 있고 워싱턴포스트와 제휴한 신문도 있다.

뉴욕타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보지 않을 자유는 있겠지만 뉴욕타임스에 뉴욕포스트나 뉴욕데일리뉴스 역할을 하도록 제삼자가 ‘유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각 신문 ‘브랜드’의 가치가 다르고 독자들의 기대치도 당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 유신시절 값은 싸지만 맛이 없고 조악한 통일벼(쌀)로 경기미를 대체하려던 시도는 거품으로 끝났다. 언론은 언론일 뿐이지 대안 언론은 없는 법이다.

<홍호표 부국장대우 이슈부장>hp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