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자 세상]'천사'가 남긴 편지

  • 입력 2001년 2월 11일 19시 19분


“천사가 살다간 것 아닌가 싶어요.”

최근 이사한 주부 이준원씨(34·서울 은평구 응암동)는 전(前)입주자가 남겨놓은 메모에 충격을 받았다. 한눈에 쏙쏙 들어오는 귀여운 글씨로 집 구석구석의 상태부터 아파트관리사무소 연락처, 아파트 주변 시장 병원 등의 특장점을 A4 용지 5장에 꼼꼼히 정리해 남겨놓았던 것. 메모를 남긴 사람은 30대 초반의 하정원씨로 최근 서초구 서초동으로 이사했다.

‘거실 침실에는 커튼을 다세요. 동향이어서 공기가 찹니다.’

‘위층에서 내려오는 물이 새는 것 같아요. 봄이 오면 청소를 많이 하니까 그 전에 고치세요.’

‘여름에 시원합니다. 여름을 지내보신 후 에어컨을 살지 여부를 결정하세요.’

‘청과물은 XX마트가 신선하고 값이 쌉니다. 야채와 생선은 XX를 이용하세요.’

‘병원은 XX는 절대 가지 마세요. 서비스가 좋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씨를 감격스럽게 한 것은 맨 마지막에 남겨진 글이었다.

‘제가 청소를 열심히 못해 구석구석에 먼지가 많습니다.…마룻바닥에 흠이 난 곳이 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황재성기자>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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