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옥순/자살사이트만 없애면 되나

  • 입력 2001년 2월 11일 18시 44분


‘자살사이트가 문제다.’ ‘폭탄사이트가 문제다.’ 연일 보도되는 기사를 보면서 자살사이트와 폭탄사이트만 없애면 우리 아이들은 자살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행복하게 지낼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문제의 사이트에 대한 폐쇄가 거론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작 심각하게 집고 넘어가야 할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복잡한 문제들이 너무 단순하게 정형화되는 잘못이 저질러지고 있다.

▼정보사회의 주인은 사람▼

자살사이트에 영향을 받은 자살은 ‘자살’이라고 하는 사회적 일탈행위의 일부다. 따라서 자살사이트에 대한 논의는 자살이라는 틀 속에서, 그리고 정보사회라는 틀 속에서 논의돼야 한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위를 선택하는 청소년의 수는 매년 늘고 있다. 특히 초등학생들의 경우 자살자의 수는 매년 2배 가량 증가하고 있다. 이들 모두가 자살사이트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자살의 증가를 논의하는 것이 우선이지 인터넷에 개설된 사이트를 비난하는 일이 우선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자살사이트나 폭탄사이트도 정보 접근의 용이성, 표현의 무한한 증가 등과 같은 정보사회의 특성 속에서 논의돼야 할 사회적 문제이지 단순히 자살과 폭탄제조에 국한해서 논의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사이트만 폐쇄하면’이라는 쪽으로 형성되는 문제 해결 논의에 접하면서 다시 한번 정보사회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재를 통감하게 된다.

정보사회의 도래를 외치면서 전 국민의 정보화를 목표로 추진된 정보화정책은 개인용 컴퓨터(PC)의 대중화라는 성과를 달성했고 이에 따라 PC통신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곧 이어 개통될 초고속 정보통신망은 한국사회를 정보선진국 대열에 진입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외형적인 정보 인프라의 구축과 함께 이뤄져야 할 사회문화적 인프라의 구축은 참으로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정보가 경제적인 재화가 되는 정보사회에서 초고속 정보통신망은 사회발전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기반시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기반시설도 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고품질의 정보를 생산하려는 의욕이 없는 한 사회발전과 연결되지 못하는 시설로 전락한다. 고속도로를 건설해 물류 이동을 촉진하려고 했더라도 이동하는 물류가 없거나 폭탄이나 자살기계만 이동시킬 경우 고속도로는 사회발전에 반하는 시설로 전락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정보의 중요성이나 고품질 정보의 생산을 위한 사회문화적인 인프라의 문제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결국 정보사회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문제다. 정보사회의 주인은 인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보사회는 인간이 주인이 아니라 기계가 주인이 되는 사회다. 할 수만 있다면 인간도 기계로 대체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다.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질서를 가르치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해야 하는 교육이 인간이라는 자원의 개발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는 현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성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다. 기계를 잘 다루는 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교육을 실시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도리와 인간성, 그리고 나아가 인간적인 정이 묻어나는 관계는 존재하기 힘들다. 이런 사회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은 자살사이트가 아니더라도 인간으로 살아가야 할 가치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폭탄의 제조와 사용에 따른 인명 실상에 대해 인간적인 고뇌를 할 수도 없다.

▼인간성 상실부터 반성해야▼

사회의 발전을 인간이 존중되는 사회로의 발전으로 바로 보지 못하는 한 정보사회에 나타나는 모든 테크놀러지(기술)는 인간성 파괴에 이용될 수 있다. 대보름 둥근 달이 기울어져 가고 있는 지금 밝고 둥근 달은 제쳐 놓고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격인 자살사이트만 놓고 논란을 벌여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인간성 상실에 대한 반성과 회복에 대한 노력이 함께 하지 않는 한 자살사이트와 폭탄사이트는 다른 형태로 우리에게 계속 나타날 것이다.

김옥순(정보통신윤리위 전문위원·청소년문화연구소 연구실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