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한기흥/부시의 야당껴안기

  • 입력 2001년 2월 4일 18시 49분


2일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열린 민주당 상원 의원들의 연례 비공개 전략회의에 뜻밖의 인물이 참석했다. 공화당 소속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나타난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해 11월 대통령 선거 패배로 정권을 내준 뒤 당의 활로에 대해 숙의하고 있었다. 부시대통령은 이들을 상대로 자신의 감세 교육개혁 국방 의료 등에 관한 정책을 10여분간 설명하고 초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그는 “사람들은 내가 ‘증오로 가득 찬 정치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대해 순진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진심”이라며 여야의 화합을 역설했다. 부시 대통령의 연설이 계속되는 동안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정중하게 경청했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부시 대통령이 의원 5명의 질문에 답변하고 자리를 뜰 때는 참석자 모두가 기립 박수로 환송했다.

미국 현대 정치사에서 대통령이 야당의 비공개 전략회의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의 이례적 회동은 민주당의 초청을 부시 대통령이 수락해 이루어졌다.

민주당 의원들은 부시 대통령의 참석을 야당에 대한 우호 표시로 해석하며 환영했다. 톰 대슐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매우 화해적이었다. 그는 주요 현안에 대해 우리와 협력하고 타협안을 모색할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다”며 흡족해 했다.

부시 대통령의 야당 모임 참석은 기본적으로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빚어진 국론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가 야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존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제스처이기도 하다. 그는 실제로 민주당이 관심을 기울이는 교육 문제를 최우선 정책으로 제시하는 등 야당을 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 완전히 둘로 쪼개진 국론을 통합하겠다는 약속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부시 대통령의 행보를 지켜보며 얼마 전 극언까지 서슴지 않았던 청와대측과 한나라당의 옹졸한 갈등이 떠올라 안타까웠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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