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영 버전2001]드림웍스, 영상산업 ‘꿈의 공장’

  • 입력 2001년 1월 28일 19시 53분


94년 10월 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호텔.

세계 영상산업의 지형도를 바꿔놓을지도 모를 ‘시한폭탄’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할리우드의 3대 흥행스타인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 데이비드 게펜이 새로운 영화사 드림웍스의 설립을 발표한 것. 당시 뉴욕타임스는 “이 신생 영화사가 미국 미디어산업 전체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한 편에선 시한폭탄이 불발로 끝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었다.

그로부터 6년여 지난 지금. 대다수의 예측대로 시한폭탄은 터졌다. 그리고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난해 미국박스오피스 흥행 기록에서 드림웍스는 일약 4위에 올랐다. ‘천재들의 대합병’이라는 점에서 출발 때부터 이미 예견됐던 결과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반세기 이상 할리우드를 지배해온 쟁쟁한 메이저 영화사들을 단 몇 년만에 뒤로 제친 것은 결코 재능만으로는 이루지못했을 일.

▽벤처에서 메이저로〓벤처를 하려면 아이디어 하나로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해당 분야에서 경영자의 능력이 남다르다는 점을 인정받든지.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끌어내지 못할 정도의 아이템이라면 시작도 하지말라는 말도 있다. 그런 점에서 드림웍스는 설립 방식이 전형적인 벤처였다.

스필버그 등 3명이 내놓은 것은 자본금의 5%인 단돈 1억달러와 각자의 재능, 그리고 향후 사업계획 뿐이었다. ‘대박’을 터뜨릴지 ‘쪽박’을 차게될지 아무도 장담 못하는 신생영화사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돈가방을 싸들고 이들을 찾아왔다. 아무리 유능한 제작자라도 대자본에 고용돼 피동적으로 일하는게 일반적이었던 당시 영화판에서 이들은 재능과 아이디어를 무기로 오히려 자본을 끌어들임으로써 영상산업에서의 헤게모니 구도를 뒤바꿨다.

다른 벤처들이 그렇듯 초창기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설립후 2년 동안 제작한 TV시리즈물이 대부분 실패를 한 것. 시한폭탄이 ‘불발탄’에 그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꾸준한 노력은 97년부터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97년 흥행 랭킹 11위에 이름을 올린 뒤 매년 승승장구, 지난해에는 파라마운트 소니 폭스 뉴라인 등을 따돌리고 4위에 올랐다. 명실상부한 메이저로 자리를 잡은 것.

▽회사 운영도 벤처〓 직원들에게 1억달러에 이르는 스톡옵션을 줬다.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직원들의 명함에는 별도의 직책이 명시되지 않았다. 능력만 되면 연공서열에 관계없이 과감히 발탁했다. 허드렛일을 하는 신입사원이라도 좋은 아이디어만 내면 선뜻 수백만달러의 제작비를 지원해주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최고 경영자의 사고와 행동방식도 벤처 스타일. 카젠버그는 토요일 새벽에 출근하는게 예사였고 추수감사절 휴가기간에 직원들을 불러내기도 했다. 스필버그는 촬영이 진행되는 중간에라도 당초 의도와 맞아들어가지 않으면 주연 배우를 전격 교체할 정도였다. 메이저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발상의 전환이 가능했기 때문.

▽고품질 소량생산이 고수익의 비결〓카젠버그는 자신들의 회사를 ‘조그만 스포츠카’에 비유하곤 했다. 스포츠카는 생산 대수는 적지만 가격에선 웬만한 고급 승용차 부럽지 않은 제품. 이들이 내세운 전략이 바로 스포츠카 생산에 적용되는 ‘고품질 소량생산’.

흥행 11위에 올랐던 97년 드림웍스가 만든 영화는 고작 3편. 98년 역시 단 6편으로 흥행 순위를 7위로 끌어올렸다. 97년 이후 지금까지 만든 영화는 모두 27편으로 연 평균 8편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메이저사들이 연간 30∼40편씩 찍어내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편수. 그럼에도 흥행랭킹에서 상위를 차지한 것은 소량생산을 하는 동안 ‘딥 임팩트’ ‘피스메이커’ ‘라이언일병 구하기’ ‘이집트 왕자’ ‘아메리칸 뷰티’ ‘글래디에이터’ 등 고품질의 작품이 나온 덕택이다. 이들의 전략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할리우드 사람들도 이제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게됐다.

▽‘작품’이 아니라 ‘상품’을 만든다〓스필버그, 카젠버그, 게펜의 공통된 시각은 영화가 ‘작품’이기 이전에 ‘상품’이라는 것. 이들이 처음 뭉치게된 배경 자체가 일생일대의 명작을 만들자는게 아니라 각자의 재능을 결합, 최대한의 시너지 효과로 최대한의 부를 창출해내자는 것이었다.

설립 때부터 이들의 의도는 명확히 드러났다. 영화 뿐 아니라 음반, TV영화, 테마파크, 디지털영상 등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전 부문에서 세계 시장을 제패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던 것. 따라서 파트너를 선택할 때도 철저히 ‘부가가치’를 계산했다.

설립 초기 지분 참여를 했던 곳은 마이크로소프트, ABC방송, 제일제당 등이었다. 거액을 내놓겠다는 대기업들이 많았지만 그 가운데서 이들을 택한 것은 자신들이 그려놓은 미래의 청사진에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향후 디지털영상 부문의 확대를 위해선 마이크로소프트의 디지털 기술이 필요했고 TV부문에선 ABC방송의 전국 네트워크가 탐났던 것. 제일제당은 아시아 지역 배급기지로서의 역할을 염두에 두고 손을 잡았다.

영상을 기반으로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을 호령하겠다는 이들의 의도는 이미 각 부문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컴퓨터 게임장 사업에도 진출, 닌텐도와 세가를 위협하고 있고 테마파크 부문에서도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위협하고 있다.

‘꿈공장’으로 불리는 드림웍스. 이들이 다음엔 또 어떤 꿈을 쫓아 나설지 이들의 행보에 세계 영상산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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