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의'도 적법절차 지켜야

  • 입력 2001년 1월 27일 18시 47분


지난해 4·13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가 벌인 낙선운동 관련자에 대한 첫 판결이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되었다. 정치 사회적으로 명분이 뚜렷하고 여론의 지지를 받는 운동이라도 실정법을 어긴 행위 자체는 결코 합리화될 수 없고 위법일 뿐이라는 판단이다.

우리는 대법원의 이러한 판단이 법률을 해석하고 법질서를 지키도록 하는 사법부의 입장에서 당연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사법(司法)의 가치관은 입법이나 행정과는 달리 변화하는 현실 환경에 대한 적응이나 융통성보다는, 다소 보수적으로 비치더라도 오직 ‘법조문과 양심’에 바탕한 심판의 엄격성, 정치성(精緻性)으로 인해 더욱 빛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낙선운동 같은 대의 명분을 내건 운동이라도 적법 절차(due process)를 지켜야만 한다는 이번 확정판결은, 다른 형태의 캠페인도 마찬가지로 적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법부의 주문이라고 볼 수 있다. ‘적법 절차’는 목표뿐만 아니라 수단과 과정의 정당성까지 취하는 것이기에, 비록 느리고 답답하며 비능률처럼 보이더라도 그 길만이 또 다른 위법이나 침해를 낳지 않는다.

정치 사회적 정의를 외치더라도 실정법을 정면으로 어기는 위법 불사(不辭)행위는 또 다른 위험을 부른다. 저마다 ‘정의’라는 관념의 깃발을 치켜들고 법률 불복종을 선언한다면, 그들의 대의와 명분을 누가 검증 심판할 것이며, 그들 검증 불능 세력의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침해는 누가 구제할 것인가. 그로 인한 혼란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법률을 지키고 절차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바탕이요, 운동이나 캠페인보다 우선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정치 개혁을 위한 시민단체의 투쟁이 무게와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니다. 사법적 정의와 정치적 사회적 이상(理想)사이에는 괴리가 있게 마련이다.

이제 괴리를 메워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유죄판결이 났다고 해서 현행 선거법이 모두 옳다는 심판은 결코 아니다. ‘정치 개혁’이라는 국민 여망을 등에 업은 시민단체의 운동이 유죄로 전락하는 모순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회는 선거법 정치자금법 등을 고치고 부패방지법 제정을 서둘러야만 한다. 시민단체도 유죄판결에 좌절하거나 헌법재판소에 위헌 제청을 하는데 머물 것이 아니라 정치 개혁 입법을 채찍질하는 캠페인에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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