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김대중 납치사건무마 위해 당시 日총리에 4억엔 전달"

  • 입력 2001년 1월 10일 19시 01분


73년 일본 도쿄(東京)의 그랜드 팰리스 호텔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납치하게 했던 박정희(朴正熙) 당시 대통령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당시 일본총리에게 4억엔 가량의 돈과 친서를 보내 사건무마에 나섰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돈을 건네주는 현장에 입회했던 일본인 기무라 히로야스(木村博保·73)가 10일 발매된 월간지 문예춘추에 당시 정황을 상세히 밝혀 알려졌다. 기무라씨는 니가타(新潟) 의원 출신으로 당시 다나카 총리 지역구에서 정책담당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기무라씨에 따르면 73년 가을 이병희(李秉禧·97년 1월 별세)무임소장관으로부터 일본의 니가타 자택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두 사람은 잘 아는 사이였다.

이장관은 이어 기무라씨의 집으로 찾아가 “김대중사건으로 우리들이 정말로 곤란하다”며 “좋은 해결책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다나카 총리를 만나도록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기무라씨의 주선으로 같은 해 10월 이장관은 다나카 총리의 도쿄 메지로(目白)자택을 방문했다. 이장관은 양손에 큰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으며 봉투 하나에 최소한 2억엔은 들어있었던 것으로 보였다고 기무라씨는 말했다.

이장관은 다나카 총리를 만나자 “선물입니다. 하나는 부인에게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어 봉투를 내밀며 “박대통령의 친서입니다”라고 말했다. 총리는 편지를 읽은 뒤 “박대통령은 건강하십니까”라며 “답장을 쓸까”라고 물었다. 이장관은 “그럴 필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

총리는 ‘선물’ 쪽을 흘낏 보며 “오히라(大平)에게도 하나 줘야지”라고 혼잣말로 말했다. 오히라는 당시의 외상이었던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기무라씨는 “한국에서 주는 거액을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받는 총리를 보면서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그는 “27년 지나 생각해보니 그때 돈을 안받았다면 김대중씨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김대중씨는 다나카 총리가 돈을 받은 뒤 며칠 지난 10월26일 가택연금에서 풀려났다.

<도쿄〓심규선특파원기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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