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부실기업 "흥청망청"…돈이 샌다

  • 입력 2001년 1월 10일 18시 38분


서울지검 특수1부는 작년 9월 당시 고병우(高炳佑)동아건설 회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4·13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등 100여명의 후보자들에게 10억원대의 정치자금을 뿌린 혐의다. 이보다 5개월 전인 4월. 고 회장과 동아건설 노조는 “성과급 400% 지급. 학자금 명목으로 기본급 50% 추가지원”을 골자로 한 노사협약을 체결했다.

동아건설은 98년 9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신규자금 1600억원과 출자전환 830억원을 지원했고 작년 4월에는 다시 1조1000억원의 출자전환과 금리감면을 결의했다. 그러나 경영진은 정반대로 정치권 로비를 하고 직원 월급을 올려준 것이다.

결국 동아건설은 작년 10월말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그 손실은 은행이 고스란히 떠안았고 이는 공적자금으로 메워졌다.

▼ '밑빠진 독' 공적자금 시리즈 ▼

- 국책은행이 나랏돈 주는 꼴
- 부실은행 공적자금 물쓰듯
- 부실기업 "흥청망청"…돈이 샌다
- "망하면 물어주지" 아무데나 선심
- '옥석' 제대로 가려 지원해야

▽워크아웃 실패로 공적자금이 샌다〓동아건설은 워크아웃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건설에 경험이 적은 고병우씨를 회장으로 영입하고 △자구노력을 충분히 하지 못했으며 △정치권 로비 등이 겹쳤다.

신호제지 이순국 회장은 회사돈을 빼내 개인 빚보증을 더는데 썼다. 동국무역이 7월 임원 연봉을 51%나 올린 것을 비롯해 10% 이상 올린 기업이 14개사나 됐다. 박상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회장은 탈세혐의로 세무조사를 받았다. 금융감독원은 진도 동양철관 신동방 서한 등을 국세청에 세무조사를 의뢰했다. 모두 워크아웃 대상 기업이다.

▽워크아웃 왜 실패했나〓워크아웃이 성공하려면 과다한 부채를 기업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적정수준으로 낮춰주고 신규운영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채권단과 회계법인이 워크아웃기업의 미래영업수익을 너무 낙관적으로 전망해 채무재조정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한빛은행 기업담당심사역은 “대부분의 워크아웃기업이 대수술이 필요했지만 채권단은 외과적 봉합만 하고 끝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방은 98년11월 워크아웃 확정 때 391억원의 부채를 출자전환으로 덜어주고 신규자금 1115억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1년반이 지난 작년 3월엔 1577억원을 또 출자전환했고 7월에는 신규자금 1551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의했다.

채권단의 고민도 있다. 워크아웃여신(고정이하) 대손충당금이 작년부터 20%에서 50% 이상으로 높아졌다. 출자전환할 경우 이 금액에 대해 시장평가 후 손실을 반영해야 하고 신규자금을 지원하면 충당금 부담까지 안게 돼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던 것.

▽경영진 선임이 잘못됐다〓경영부실로 채무재조정을 받은 18개사 중 기업주가 퇴진한 곳은 동아건설 동국무역 맥슨전자 진도 세풍 충남방적 등 8개사뿐이었다. 금융감독원은 경영권을 고수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고합 장치혁 회장, 갑을방적 박창호 회장 등을 꼽았다.

또 워크아웃기업 60개사의 사외이사 가운데 59.3%가 채권금융기관 출신으로 임명돼 있어 또 다른 ‘낙하산인사’ 시비가 불거졌다.

기존 경영진과 채권단 퇴직임원들이 워크아웃기업의 경영진이 돼 기업회생작업이나 지원금의 적정사용여부 감시는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인 P&R컨설팅 이상묵 대표는 “워크아웃에서는 채무재조정에 이어 생산라인 재정비와 비용감축 등 회사갱생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며“산업전문가를 경영진으로 뽑아 자기책임하에 기업회생작업을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워크아웃기업, 제대로 선정했나〓서울은행 관계자는 “사실상 워크아웃기업 중 상당수는 워크아웃에 부적합했지만 정치적 산업적 영향을 고려해 들어왔다”며 “회생가능성이 없어 퇴출시키려고 해도 특정지역 인사들의 청탁 때문에 힘든 점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건설회사는 수많은 공사현장을 직접 방문해 실사할 수 없어 사업의 수익성을 측정하기 매우 어려워 워크아웃 프로그램이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 중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실업불안과 해당지역 정치권 인사들의 청탁으로 워크아웃이라는 우산 아래서 자금을 받아갔던 것.

▼금융 공적자금 109조 어디썼나▼

정부가 지금까지 국회동의를 얻어 금융구조조정에 사용한 금액은 모두 109조6000억원. 이중 자산관리공사(KAMCO)의 부실채권 재매각 대금 등 회수 후 재사용한 18조6000억원을 제외할 경우 순수하게 투입한 자금은 91조원이다.

그렇다면 이 돈은 어디로 갔을까. 70조3000억원(64%)은 은행구조조정에 사용됐다. 특히 제일 12조5404억원, 서울 8조1113억원 등 두 은행에만 20조원이 넘는 자금이 들어갔다.

97년부터 시작된 한보 기아사태와 외환위기 후 기업 연쇄부도로 은행의 부실채권이 급증하면서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크게 떨어져 이를 끌어올리기 위한 것.

특히 대우그룹 법정관리 신청으로 65조원에 달하는 은행 투신사 등 금융기관이 갖고 있던 대우 관련 여신액의 상당부분이 회수불가능해져 정부가 다시 메워줬다.

종금사와 신용금고 신협 등 제2금융권에는 퇴출금융기관 예금대지급으로 14조5000억원이 대지급됐으며 대부분 회수가 불가능하다.

부실은행 출자분 42조원, 금융기관에서 인수한 부실채권(31조1000억원)과 부동산(10조4000억원) 등은 그동안 일부 매각된 것을 제외하면 자산관리공사와 예금보험공사가 갖고 있다. 그러나 주식은 주가가 형편없이 낮아 휴지조각과 마찬가지다.

<김두영·이나연기자>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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