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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2월 25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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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노트북은 007 영화에서 나온 폭탄 볼펜이나 기관총 우산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가 사용하는 노트북과 무선모뎀은 제임스 본드의 첨단 공작기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솔다토프는 바로 러시아의 첩보활동에 관한 웹사이트(Agentura.ru)의 운영자이기 때문.
솔다토프는 96년부터 지난달까지 이즈베스티야지에서 러시아의 첩보활동에 관한 기사를 썼던 기자였다. 첩보기관 관련자료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9월에 개설한 그의 웹사이트에는 러시아의 정보기관, 주요 정보관리의 약력, 보안에 관련된 문서 등 방대한 자료가 담겨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구 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는 첩보활동에 관련된 보도관행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구 소련 시절에는 KGB 등 정보기관에 관련된 출판물은 일절 나올 수가 없었던 것. 그러나 솔다토프의 시도는 포스트소비에트 시대에서 과거 첩보활동에 대한 비밀주의가 어느 정도까지 깨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타임스는 보도했다.
솔다토프가 웹사이트를 개설하기까지 무엇보다 아버지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아버지는 바로 러시아의 거대 인터넷서비스 사업자인 렐컴(Relcom.ru)사의 알렉세이 솔다토프 사장. 그가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첩보기관 관련자료를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을 때 아버지는 흔쾌히 승낙, 물심양면의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이트 개설시기는 전 KGB 관리였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취임하는 것과 맞췄어요. 이때는 러시아 국민도 첩보활동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했던 시기였죠.”
웹사이트의 하루 방문객 수는 10월 500여명 수준이었다가 점점 늘어나 지난달에는 1100명까지 올라간 상태. 방문객들은 ‘CIA의 쿠르스크 잠수함 침몰사건 개입설’ ‘미 해군 장교 출신 스파이 검거 사건’ 등 국제 첩보활동에 관한 자료들도 검색할 수 있다.
솔다토프는 ‘미국과학자연맹(FAS)’의 정보자원 프로그램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FAS는 국제적인 첩보활동이나 군비축소 등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공개하는 전문가들의 모임. FAS의 수석분석가인 스티븐 애프터굿은 “정부가 어느 정도까지 문서를 공개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지와 관련, 솔다토프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 방문객들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의 반응도 뜨겁다.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분석가로 일했던 앨런 톰슨은 “매우 인상적이다. 러시아인으로서 첩보기관 문제에 대해 탁월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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