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사이언스] 컴퓨터를 입고 다닌다

  • 입력 2000년 12월 17일 18시 36분


지난달 말 캐나다 토론토 시내에 괴상한 차림의 사나이가 나타났다. 컴퓨터가 내장된 오렌지색 조끼를 입은 이 남자는 스크린과 디지털 카메라가 달린 헬멧을 쓰고 있었다. 게다가 조끼에는 컴퓨터와 무선으로 연결가능한 휴대전화기가 붙어있고, 왼쪽 팔에는 터치스크린과 키보드까지 달려 있었다.

로보캅은 분명히 아닌데 1.8㎏이나 되는 첨단 정보기기로 무장한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통신업체인 벨캐나다의 현장 기술자 크리스 홀름라우어슨이었다. 컴퓨터를 ‘입은’ 홀름라우어슨씨는 휴대전화를 통해 본부의 인트라넷에 접속, 작업지시를 받고 있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음성인식기술의 발달과 컴퓨터의 소형화에 힘입어 ‘입는 컴퓨터’가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정보통신업체의 기술자, 병원의 수술진, 비행정비사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입는 컴퓨터’는 첨단 정보통신기기가 사무실뿐만 아니라 작업현장에서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고 타임스는 보도했다.

이날 작업지시를 받기전 홀름 라우어슨씨는 현장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본사에서 조끼에 달려있는 위치정보시스템(GPS)을 추적, 그가 현장에 가장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는 작업지시를 한 것. 전화함을 열자 배선이 복잡하게 얽혀있었지만 디지털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15인치 크기로 보여주는 스크린 때문에 무리없이 끊긴 배선을 찾아낼 수 있었다. 작업 도중 헷갈리는 것은 터치스크린으로 본부에서 보내주는 작업순서를 찾아보면 된다.

홀름라우어슨씨처럼 ‘입는 컴퓨터’를 착용한 현장기술자를 벨캐나다사는 ‘가상 노드’라고 부른다. 노드는 네트워크의 접속점을 뜻하는 통신 용어. 즉 본부와 현장기술자가 연결돼 캐나다 전역을 아우르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룬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벨캐나다는 18명의 현장기술자에게 ‘입는 컴퓨터’를 지급하고 얼마나 작업 효율이 향상되는지를 실험하고 있다.

초기단계여서 아직까지 결함도 많이 드러났다. 각종 장치들로 무거워진 헬멧, 햇빛에 맥을 못추는 터치스크린, 배터리 용량 등이다. 여기에 GPS는 기술자들에게 ‘추적당한다’는 느낌마저 준다.

벨캐나다에서 ‘가상 노드’를 관리하는 브래드 치티 부장은 “작업 효율이 얼마나 향상됐는지 정확한 통계로 보여줄 수는 없지만 솔직히 감동했다”며 “결함을 보완하는 대로 모든 현장기술자에게 확대할 생각”이라고 했다.

‘입는 컴퓨터’를 만드는 업체는 사이버노트(Xybernaut)와 바이에이(ViA)가 대표적이다. 특히 사이버노트는 관련 특허만 532건을 획득했고 바이에이는 허리 벨트에 정보기기를 집약해 놓는 기술을 자랑한다. 벨캐나다를 비롯, 제너럴일렉트릭(GE) 노스웨스턴 항공사 등이 두 업체에서 구입한 것만 ‘수천벌’에 이를 정도로 ‘입는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타임스는 전했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