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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1월 7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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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가 극에 달해 실업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노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던 1998년 초, 국제통화기금(IMF) 등 외국기관의 전문가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놀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어떻게 한국 같은 규모의 경제를 유지하던 나라에서 이렇게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면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의 사회안전망의 현실은 어떠한가.
사회안전망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경제에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실업과 빈곤이라는 사회문제를 '개인' 보다는 '사회'가 주체적으로 책임지고 해결함으로써, 사회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하고 이를 기초로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회안전망의 근간이 되는 사회보험제도를 보면 사회통합은 커녕 국민을 '두 종류의 국민'으로 분리하고 있다. 즉 사회보험의 적용을 받아서 노령 실업 질병 그리고 산업재해와 같은 사회적 위험에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는 국민과, 사회보험제도에서 배제돼 사회적 위험에 빠질 경우 곧 바로 가계파탄과 절대빈곤층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는 국민이다.
7월부터 고용보험제도와 산재보험제도의 적용대상이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됐지만, 여전히 비정규직 근로자 중 상당수가 사회보험제도에서 배제돼 있다. 더욱이 1년 미만 전직 실업자의 82.1%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한 사회보험제도 적용문제는 시급을 요하는 중대 사안이다. 따라서 현행 사회보험제도가 계속되면 사회보험제도는 결국 없는 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근본 목적을 망각한 채, 있는 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파행적인 제도로 고착될 수 있다.
사회안전망을 이루는 또 한가지 축으로 일정 수준 이하의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부조제도가 있다. 하지만 10월부터 실시하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도 까다로운 선정기준 때문에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등 보완이 시급하다. 특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권자를 주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호제도는 근로능력이 있는 조건부 수급권자들에게는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자기부담금을 물리는 등 전근대적인 공공부조제도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생산적 복지를 새로운 국정지표로 천명하고 복지제도의 개혁을 추진해왔지만 경제위기에 대처할만한 수준의 사회안전망은 요원하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도 갈 길은 너무나 뚜렷하다. 사회공동체의 지도원리인 헌법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이 헌법에서 규정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를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명확하고 실현 가능한 계획을 제도별로 수립하고, 이에 기초해 제도적 개선을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특히 경제가 좀 나아졌다 싶으면 사회복지의 축소를 통한 재정 건전화와 경쟁력 강화를 주장하다가, 다시 경제가 나빠져서 실업자가 양산되면 그제서야 사회안전망을 구축한다고 요란을 떠는 악순환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퇴출과 이에 따른 대량실업의 한파는 우리 사회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연대의식이 회복돼야 함을 웅변으로 알려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경제위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천박한 물신주의와 무한경쟁만이 최고의 미덕인 정글 자본주의 에서 뒤쳐진 사람들과 함께 손잡고 같이 뛸 수 있는 연대의식에 기초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를 건설하는 것만이 경제위기 극복과 사회통합에 기초한 경제번영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문진영(서강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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