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 맛있는 수다]시부모님, 생신상 받으세요

  • 입력 2000년 11월 7일 13시 45분


결혼을 하면 처녀 적엔 상상도 못할 만큼 신경 쓸 일이 많아집니다. 그중 제일 막막했던 일이 아마 시부모님 생신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직장을 다닐 땐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선물만 달랑 사들고 가서 저녁 한끼 얻어먹고 왔었는데 전업주부가 되고 보니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수는 없겠더라구요. 뭔가 이 며느리의 정성을 보여드려야만 할 것 같은, 조선시대부터 연연히 흘러내려온 비장한 의무감이랄까?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봤죠. "니들은 시부모님 생신에 뭐 하니? 뭐 준비하니?" 제 친구들, 정말 성격대로 살고 있더군요. 아예 미역국부터 갈비, 잡채까지 한상 차려 시부모님을 초대한다는 효부에서 "준비는 뭔 준비냐, 선물 사가면 됐지!"하는 속 편한 며느리까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하나 고민 중인 저에게 한 친구가 귀가 솔깃해지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야, 불고기 재 가. 불고기. 만들기도 쉽고 해가면 폼난다"

만들기도 쉬운데다 폼나는 요리라… 그야말로 제가 찾던 요리였죠. 그래서 난생 처음 불고기 만들기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불고기는 무엇보다 고기가 좋아야한다기에 15분이나 걸어 축협에 가서 고기를 사오고 양념장은 슈퍼에서 파는 알록달록한 불고기 양념장은 쳐다보지도 않고(그런 양념장, 화학조미료 덩어리인 거 아시죠?) 요리책에 나온 복잡한 공식대로 한치의 실수없이 만들어냈죠.

사실 요리책에 나오는 양념장 만들기 정말 짜증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사과 1/8개, 배 1/8개 갈은 즙에 포도주 2/3스푼… 뭐, 이런 식이니 따라하다 보면 꼭 한두가지 빠지기 마련이고. "스파게티 만들어 보자!" 하다가도 요리책에 '오레가노 잎 한장에 프레시 바질 잎이 네장…'하는 걸 보면 "에이, 사먹는다!"하게 되거든요. 그렇지만 불고기 양념장은 간장, 청주, 다진 마늘, 설탕, 참기름 등등 기본적인 양념으로 해결이 되더군요. 고기를 연하게 하기 위해서는 키위즙이나 파인애플즙을 쓰기도 한다던데 전 배즙을 사용했습니다. 아주 충분히 연했습니다.

어느 집이나 잔치상 단골메뉴인 불고기. 이게 참 역사가 깊은 요리더라구요. 불고기는 그 옛날 고구려 시대의 '맥적'이라는 고기구이에서 유례했대요. '맥적'이 고려말엔 '설야먹'이란 이름으로 계승됐는데 그것이 부동의 인기메뉴 불고기의 뿌리라네요.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요리하면 "불고우기!"를 최고로 꼽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죠?

아, 어쨌든 저의 불고기는 꽤나 그럴 듯하게 만들어졌습니다. 한손엔 선물을, 한손엔 미역국과 불고기를 들고 시댁에 들어서자니 어찌나 의기양양해지던지요. 혹시라도 맛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기특한 요리책 덕분에 참나, 맛까지 좋더라구요. 시부모님께 칭찬 좀 들었죠.

그나저나 내년 생신 때는 불고기를 능가하는 요리를 준비해야 할텐데 벌써부터 그것이 큰 고민이네요. 불고기보다 만들기 쉽고 폼나는 요리를 아시면 좀 알려주세요.

시부모님 생신 상을 빛내줄 불고기 만드는 법!!

▼ 재료 ▼

쇠고기 꽃등심 600g, 양파, 팽이버섯, 양념장(배즙, 간장 6큰술, 다진마늘 4큰술, 다진파 4큰술, 설탕 3큰술, 깨소금 1큰술, 참기름 2큰술, 후춧가루 1큰술, 물엿, 1큰술, 청주 1.5큰술)

▼ 만들기▼

① 고기에 배즙을 켜켜이 재워둔다.
② 분량의 양념장 재료를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③ 야채를 다듬어 양파는 채썰고 팽이버섯의 밑동을 잘라둔다.
④ 고기를 한 장씩 양념장에 묻힌 뒤 주물러 간이 고루 배이게 한다.
⑤ 고기와 버섯, 양파를 같이 재워둔다.
⑥ 30분 이상 재운 뒤 달궈진 팬에 구워먹는다.

P.S ) 나중에 저 혼자 해본 방법인데요, 고기 양을 좀 줄이고 당근, 대파, 깻잎, 양송이 같은 야채를 넉넉히 넣고 구워먹었더니 더 맛있더군요. 고기즙에 볶아진 야채의 부드러운 맛! 남의 눈치 안보고 고기만 골라먹는 사람들은 모를 껍니다.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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