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는 살아있다]노마 "돈없어도 기 안죽고 잘 놀아요"

  • 입력 2000년 11월 3일 18시 45분


저는 노마예요. 이름은 많이 들어 보셨겠지만, 제가 동화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잘 모르셨죠? 40년대 전후에 소설과 동화를 많이 썼던 현덕 아저씨의 작품에는 으레 제가 등장한답니다.

제가 어떤 아이냐면요, 한 마디로, 열심히 노는 아이예요. 아빠는 어디로 가셨는지도 모르고, 엄마 혼자 삯바느질로 살림을 꾸려가는 가난한 집 아이지만, 저는 친구들과 함께 온갖 놀이에 열중하면서 하루하루를 뿌듯하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그래요. ‘빠듯하게’가 아니고 ‘뿌듯하게’! 물론 속상할 때도 있죠. 먼 길 가야 하는데 신발 뒤축이 다 해져 너덜너덜할 때. 엄마가 임시방편으로 바꿔온 게 더 기막히게도 여자 고무신일 때. 부잣집 친구 기동이가 장난감 척척 사는 걸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할 때. 하지만 저는 그런 일로 오래 기죽어 있지 않아요. 심부름 가서 받은 돈으로 엄마는 우선 제 신발을 사 주실 테니까요. 번쩍번쩍 비싼 칼 든 기동이가 대장 할 때도 있지만, 용감하게도 무서운 개가 있는 집 대문을 때리고 온 제가 대장 할 때도 있으니까요. 엄마가 헝겊으로 만든 강아지, 제가 상자갑으로 만든 기차가 있으니까요.

노는 일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저는 어린 아이잖아요. 우리 아이들에게는 세상 모든 일이 놀이가 되고, 노는 일이 바로 세상을 배우며 살아나가는 일이에요. 남이 가진 것 내게 없어도 다른 걸로 채울 줄 아는 법, 포기할 건 포기할 줄 아는 법, 정말로 원하는 걸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법, 오해하고 미워하기도 하지만 잊어버리고 용서하고 다시 어울리는 법 같은 것들을 우리는 놀면서 익힌답니다.

그러니 우리를 놀게 해 주세요. 현덕 아저씨처럼 말예요. 우리에게 미래의 주인공이라는 짐을 지우지 마세요. 그건 현재에 자신 없는 어른들이 자기들 몫을 우리에게 떠넘기려는 핑계인 것 같아요.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힘껏 현재를 살아갈 뿐이에요. 고양이가 돼서 북어도 훔쳐먹고, 맛있는 과자 혼자만 먹는 친구한테는 흙도 끼얹고 전차놀이 하면서 뭉개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너하고만 놀겠다며 아양을 떨어 결국 얻어먹고, 그러면서 말예요.

우리가 살던 어렵고 험난한 시대의 상징이 되고 희망이 되는 것도 좋지만, ‘놀이하는 인간’으로서의 아이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한 일 아니겠어요? 제가 이렇게 생생하게 노는 아이로 살아 있는 게 참 기뻐요. 북으로 간 현덕 아저씨가 거기서도 저처럼 재미있게 노는 아이를 만들어냈다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만나서 함께 놀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김서정(동화작가·공주영상정보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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