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상 초유의 조종사 파업

  • 입력 2000년 10월 22일 18시 31분


외국에서나 있는 일로 생각했던 항공기 조종사 파업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일어났다. 어제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파업을 하는 바람에 수많은 국제선 국내선 결항 사태로 예약 승객들이 일정에 차질을 빚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특히 500여명 조종사의 파업이 행여 항공기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항공사는 여느 제조업체와 달리 파업이 가져오는 사회적 파장이 엄청나다. 5월 조종사 노조 설립 이후 첫 단체 협상에서 노사 양측이 파업사태를 막기 위해 과연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묻고 싶다.

대한항공은 파업으로 인한 결항 사태가 계속되면 하루 평균 매출 손실이 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일반 제조업체는 파업 기간의 생산 손실을 시간외 작업을 통해 벌충할 수 있지만 항공사가 한번 놓친 고객은 다시 붙잡아 올 수 없다. 실례로 에어 프랑스는 조종사 노조가 98년 월드컵 기간에 맞춰 일으킨 파업으로 2억6000만달러의 매출 손실을 입었다.

최근 고유가(高油價)와 소비 위축으로 수익 구조가 악화되는 상태에서 파업이 장기화하면 항공사는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경영 악화는 필연적으로 안전과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파업으로 대한항공이 입은 이미지 손실도 적지 않다.

노사 합의안에는 최장 비행시간을 월 75시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내용도 들어 있다. 대한항공은 숙련 조종사가 모자라 성수기에는 월 100시간을 넘겨 비행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노조가 요구하기 이전에 무리한 비행시간을 시정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옳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두 국적 항공사는 연간 250명 가량의 신규 조종사를 필요로 하지만 자체 교육과 공군 전역자 등을 통해 확보되는 인력은 150명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이번에 외국인 조종사 채용동결 및 단계적 감축을 요구했다. 외국인 조종사를 채용하는데 경비를 포함해 연간 1인당 15만달러가 들고 내국인 조종사와 언어소통이 자유롭지 않아 비상사태 대처 능력이 저하된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조종사 공급이 부족한 현실에서 외국인 조종사를 채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도 조종사 인력 양성을 민간 항공사에만 맡기지 말고 정책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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