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노블리>,남자없인 못 살것 같은 여자들이야기

  • 입력 2000년 10월 9일 14시 00분


<노블리>는 남자가 없었다면 더 잘 살아갈 뻔한 여자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결코 아마조네스를 꿈꾸는 과격함도, 래디컬 페미니즘 운운하는 정치성도 갖추지 못했다. 아니, 그런 것들엔 애초에 관심조차 없다.

황량한 사막 한 복판에서 만나 우정을 돈독히 했던 <바그다드 카페>의 그녀들이나 목적 없이 세상 끝으로 달려간 <델마와 루이스>의 그녀들과는 아주 많이 달랐던 그들. <노블리>의 그녀들은 남자들에게 숱한 배신을 당하면서도 또 남자 없이는 하루도 못 살 것 같은 여자들이다. 세상이 음과 양의 적절한 조화임을 잊지 않은 온순한 페미니즘 영화라고 하면 적당할까.

5라는 숫자를 불운의 숫자로 굳게 믿고 있는 17세 임산부 노블리(나탈리 포트먼)는 초장부터 애인에게 버림받는 신세다. 자신의 아이를 뱃속에 담고 있는 노블리에게 한 치의 사랑도 내주지 않는 남자 윌리. 그는 월마트에서 샌들을 고르고 있는 노블리를 둔 채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그녀의 손엔 공교롭게도 샌들을 사고 남은 거스름돈 5달러 55세트가 남는다.

아무 데도 갈 곳 없는 노블리는 월마트에서 숨어살다 아이를 낳은 덕분에 TV 속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는데, 세상 한 복판에 버려진 그녀를 보살펴 주는 사람은 물론 동병상련의 아픔을 아는 여자들이다.

노블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살았던 출산 보조사 렉시(애슐리 저드)와 피 한 방울 섞여있지 않은 노블리를 딸처럼 귀여워 해주는 이웃집 아주머니 시스터는 서로에게 친자매 이상이다. 이웃집 아주머니의 이름이 '시스터(Sister 여자형제)'라는 것도 결코 우연한 것만은 아닌 듯.

<노블리>에 등장하는 이 세 명의 여성들은 남자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남자를 다루는 방식은 많이 다르다. 아직 풋내기 엄마인 노블리는 늘씬한 핸섬 가이에게 열정을 쏟으며, 렉시는 다섯 아이의 훌륭한 아버지가 될 남자에게, 시스터는 남은 여생을 함께 할 따뜻한 성품의 남자에게 애정을 쏟는다.

그러나 그녀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남자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노블리는 손대면 닿을 거리에 있는 이상적인 남자를 알아보지 못하며, 렉시는 다섯 아이들에게 악몽을 선사해줄 남자에게 흠뻑 빠져버린다. 삶의 연륜이 깊은 시스터만이 이상적인 남자와 현실의 남자를 온전히 구별해낼 수 있을 뿐.

<노블리>는 이처럼 세상살이에 서툰 여자들의 이야기를 따스한 온기로 덥혀내지만, 또 그만큼 자기 모멸적이다. 여성은 절대 혼자 살긴 힘든 족속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각 여성들의 제 짝 찾아주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노블리>는 엉성한 페미니즘 영화이자 느슨한 멜로드라마에 머물고 말았다.

이것은 텔레비전 드라마 PD로 명성을 쌓아온 매튜 윌리엄슨 감독의 태생적인 한계 때문인지도 모른다. 멜로 드라마식 구성 방식은 그가 제일 자신 있어 하는 부분 중 하나. 실제로 <노블리>가 원작으로 삼은 소설 'Where the Heart Is'는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를 감동시켰고, 오프라 윈프리 쇼 'Book Club'에 소개되어 전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좋은 소재를 힘있게 밀어붙이지 못한 이 영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17세 미혼모 노블리 역을 맡은 나탈리 포트먼이나 다섯 아이의 엄마 렉시 역을 맡은 애슐리 저드의 연기는 영화의 밋밋함을 덮어줄 만큼 신선하다.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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