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원식/한-러友好 남북화해에 큰힘

  • 입력 2000년 9월 28일 18시 56분


한―러 수교이래 10년 동안 러시아는 초강대국으로서의 국제적 지위를 상실했다. 뿐만 아니라 남북한과 동시 수교한 국가로서의 유리한 입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해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주변부 역할에 머물러 왔다.

▼러시아 한반도문제 적극 개입▼

그러나 지금 러시아는 한반도에 대한 적극정책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다. 젊고 패기에 찬 40대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통해 국내정치를 안정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도 작년부터 플러스 성장을 보이고 있다. 국가주의적 전통이 강한 러시아에서는 늘 강력한 전제권력의 존재가 국가의 힘을 상징해 왔다. 푸틴 대통령은 이런 역사문화적 전통과 국민적 정서를 바탕으로 집권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강한 러시아’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재벌과 지방정부를 길들이고 세수 확보에 성공해 정치 경제적 안정을 확보하고 있기에 적극적인 외교정책 추진도 이제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옛 소련 시대 이래로 러시아의 입지는 동북아에서 매우 제한적이었다. 러―일 관계는 북방영토 문제로 발목이 잡혀있고, 러―중의 전략적 협력은 중국에 의해 주도돼 왔다. 이리하여 현상타파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는 러시아는 동북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현재 한반도 정세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조성된 새로운 변화로 말미암아 매우 유동적인 상황에 있어, 러시아로서는 그 동안의 역내에서의 열세와 정체를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7월 푸틴 대통령이 옛 소련과 러시아의 최고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것은 바로 이런 까닭에서였다. 그것은 동시에 지난 10년간 러시아를 홀대해 온 한국정부에 대한 압력카드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이중의 효과를 가져온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의 중심고리가 북한의 핵 및 미사일문제와 그 해결을 위한 북―미 협상에서 남북대화로 급변하면서 미국의 역할과 입지가 축소된 틈새를 러시아가 비집고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농담발언으로 한차례 소동이 벌어지긴 했지만, 푸틴 대통령이 오키나와 G8 정상회의에서 북한 미사일 대체발사 문제를 제기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앞으로 러시아는 한반도문제 해결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할 것이며, 북한도 이를 적극 수용 또는 요청할 것이다.

그것은 북한으로서도 러시아와의 관계발전을 통해 직접 얻을 수 있는 외교 군사 경제적 이득이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한 카드로 러시아를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8월말 북한이 북―일 수교협상 개최 장소로 모스크바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더욱이 푸틴 대통령은 극동시베리아 개발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이는 서시베리아 석유의 60%가 이미 채굴된 상황에서 동부 개발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어서뿐만 아니라, 유럽국가가 아니라 유라시아국가로서의 국가정체성 확립과 직접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남북한 철도연결을 통한 ‘철의 실크로드’ 구상과 아시아 가스관 부설사업 등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北 뒷걸음질 견제할 수 있어▼

러시아가 한반도문제 해결의 새로운 변수와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10년 전 우리는 러시아와 수교하면서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역할을 기대하였으나, 소비에트 연방 해체와 함께 러시아의 입지는 급격하게 축소되고 말았다. 이와 함께 러시아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차갑게 돌아섰다.

러시아는 지구 반대편 유럽 저 멀리에 있는 국가가 아니다. 현재 북한과 접경하고 있고, 통일이 되면 통일한국의 접경국가가 된다. 우리는 그 동안 러시아를 너무 홀대해 온 것은 아닐까. 세계 최대의 영토대국이며, 자원의 보고인 러시아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자.

더욱이 러시아는 남북관계의 지속적 발전을 보장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러시아는 현재의 남북관계 발전에 만족하고 있고, 그 속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점차 확대시켜 갈 것이다. 그리하여 러시아는 향후 있을지도 모를 북한의 남북대화 뒷걸음질 가능성을 견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보험으로서도 한―러 관계발전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강원식(관동대 교수·러시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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