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찬선/덩치만 크면 초우량은행?

  • 입력 2000년 9월 26일 18시 56분


“초우량은행이 무엇입니까.”

“지난 50년간 없었던 초우량은행이 한달 사이에 만들어질 수 있습니까.”

진념 재정경제부장관과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기회 있을 때마다 “현재 물밑 접촉이 활발하며 10월중에는 가시화될 것”이라는 화두(話頭)를 던지면서 초우량은행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러나 초우량은행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초우량은행이 되는지에 대해 명확히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금감위나 금감원 실무자에게 물어보면 “글쎄요”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기껏해야 “자산이 세계 50위권은 되고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10% 이상이며 부실채권 비율이 3% 이하인 은행이지 않겠느냐”며 상식으로 판단해 달라고 한다.

이를 종합해보면 ‘초우량은행〓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운 은행’이란 결론을 얻게 된다. 99년 말 현재 세계 50위 은행의 자산이 2100억달러(약 232조원)이다. 따라서 합병 후 자산이 여기에 근접하는 은행들이 어디인지 관심이 몰린다. 국민(90조6907억원)과 외환(52조1206억원), 한미(31조원)+하나(50조원)와 주택은행(63조원), 한빛(80조원)은행과 일부 지방은행 등의 짝짓기 시나리오가 그럴듯하게 나도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문제는 몸집만 크다고 초우량은행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쳐진 한빛은행의 자산은 국민은행에 이어 2위이지만 한빛은행을 우량은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31조원인 한미은행이 더 우량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빛 조흥 외환은행 등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BIS비율이 10%를 넘게 돼 우량은행으로 변신하지만, 부실채권 비율은 여전히 10%를 넘는다.

초우량은행은 있어야 한다는 당위나, 갖고 싶다는 희망으로 단시일 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몸이 건장한 마당쇠의 몸에 공부는 잘하지만 허약체질인 서당도령의 머리를 붙인다고 헌헌장부가 되지 못한다. 정부가 초우량은행 출현을 예고하고 있음에도 외국인들이 은행주를 대량 매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곱씹어봐야 한다.

홍찬선<금융부>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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