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회창총재 "김대통령 솔직 겸허해지길"

  • 입력 2000년 9월 8일 18시 25분


《여야 대치정국이 가파르기만 하다. 여권은 8일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단독 처리했고 한나라당은 다시 장외로 나갔다. 상생의 정치는 간데 없고 상극의 정치만 있는 꼴이다. 극한 대결 속에서 죽어나는 것은 민생뿐이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는 추석, 여야 모두 한 걸음씩 물러서서 대화와 타협으로 대결정국을 풀 수는 없는 것일까.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를 여의도 당사에서 만나 보았다.》

―7일 서울역 집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봅니까.

“저도 답답하고, 국민에게도 송구스럽습니다. 문제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첫째는 국회법 개정안 날치기처리입니다. 여당은 스스로 날치기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해놓고도 뒤통수치듯이 날치기를 했습니다. 둘째는 부정선거수사 축소은폐사건입니다. 이 문제는 정말 중요합니다. 국가 기강을 흔드는 사안으로 실언(失言)이라며 넘어가려는 것을 지나칠 수 없습니다.”

―잘못이 누구에게 있든 정기국회는 정상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국민도 있습니다. 야당이 전격적으로 국회에 들어갈 생각은 없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국민에게 점수를 따자는 차원이 아닙니다. 진정한 문제해결의 가닥이 잡히지 않고서는 국회에 들어가도 의미가 없습니다. 이 문제가 국회에 들어가는 것보다 공익에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특검제 통해 진실 밝혀야▼

―국민은 선거비용 실사개입 의혹사건과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 등으로 매우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사실 간단합니다. 아집과 오만을 버리면 됩니다. 민주당 윤철상(尹鐵相)의원의 (선거비용 실사에 개입했다는 등의)말이 실언이라면, 그것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특검제를 도입하면 됩니다. 한빛은행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나라당에서는 ‘이러다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비참한 말로를 맞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곤 합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비유하는 논평도 있었는데 총재께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미국에서도 ‘워터게이트 사건’ 초기에는 그 누구도 이 사건이 닉슨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을 뺏어 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은폐 시도가 문제를 키웠습니다. 김대통령이나 그 측근들도 최근의 의혹사건을 실언이나 말직(末職)의 비리로 덮어버리면 엄청난 결과로 파급될 것입니다.”

―김대통령과 총재 사이의 개인적 불신이 여야 관계 악화의 주 요인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김대통령을 돕는 ‘광폭(廣幅)정치’를 할 의향은 없습니까.

“정국이 꼬인 것은 개인적 불신보다는 정국을 보는 대통령의 인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당이 힘이 세고 다수여야 정국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한 이렇게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한 시대를 맡은 대통령이 임기 동안 힘껏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상생(相生)의 정치를 표방했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배신감만 느꼈습니다.”

▼전시효과 노리는 남북관계 곤란▼

―남북문제로 화제를 돌리겠습니다. 상호주의를 요구하는 야당의 대북(對北)관으로는 남북관계 진전이 어렵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진전을 어떤 컨셉트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유리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진전은 ‘진정한 진전’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전시효과만 노리는 식이 되면 곤란합니다. 예를 들어 북한 주민의 삶을 향상시키려면 북한 경제구조의 변화가 따라야 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건전한, 제대로 된 진전을 위해 필요한 것을 주장합니다.”

―보스워스 주한 미대사가 얼마 전 결국 남북 경협비용은 한국이 부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통일비용의 재원 조달을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봅니까.

“보스워스의 발언은 굉장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통일비용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지원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개성공단 발표 등 이벤트성으로 문제에 접근합니다. 재원문제와 관련해 동북아개발은행 설립문제를 제가 꺼낸 적도 있습니다.”

―제2의 경제위기설도 나오고 있습니다. 공적자금 규모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경제가 굉장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일각에서는 올해 후반기에서 내년까지가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부가 워낙 경기 부양에 재원을 쏟아부어 경기가 하강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현 정부가 97년의 유동성위기를 극복한 것은 사실이지만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은 아닙니다. 공적자금은 10조원이 아니라 그 이상도 경제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하다면 투입하되, 그것이 제대로 투입되고 집행되는지 밝혀야 합니다.”

▼개헌논의는 대선끝난 뒤에나▼

―작년에 ‘대통령 4년 중임개헌’에 긍정 검토 의견을 말한 적이 있는데….

“개헌 문제가 제기된다면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2002년 대선 전에 개헌논의가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각제는 우리 실정에 맞지 않습니다.”

―대선 승리 가능성을 어떻게 봅니까. 가장 유력한 잠재적인 경쟁자는 누구로 보나요.

“지금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많아서….(웃음) 아직 언급할 시기가 아닙니다.”

―이총재와 양김(兩金)이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무언가 다를 것 같은데….

“법의 원칙과 법치의 개념이 서야 한다고 봅니다. 이 정부의 국정혼선도 전부 그것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장경제 개념도 바탕은 룰(rule)입니다. 하버마스는 ‘법 질서’라고 말합니다. 법치 법의 지배가 정치 경제 사회적 기반이 돼야 통일도 커다란 동요 없이 이뤄낼 수 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4강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해야 한다고 봅니까.

“우선 한국과 미국의 동맹 내지 상호작용은 앞으로도 중요한 골간이 돼야 합니다. 여기에 페리 프로세스에 따른 한미일 공조도 한반도 현안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중국과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을 유도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서울에 온다면 만나겠습니까.

“정말 오는지도 아직은 모르고, 만약 온다면 그 때 봐서 만날 수도 있겠지요.”

―여야 영수회담을 할 의사는 없습니까.

“누누이 말했지만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핵심적인 사안이 먼저 풀려야 합니다. 단순히 여야영수가 만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에게 고언을 한다면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대통령이 정말 솔직하고 겸허했으면 합니다. ‘국회에서 다수결로 하면 된다’ ‘여당이 강해져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을 듣고 사실 저는 기가 찼습니다. 이는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야당이 구색으로 있는 것입니까. 큰 눈을 갖고 사안을 봐야 합니다.”

<정리〓송인수·공종식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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