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0년 8월 6일 18시 46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탈선 우려" 설득력 없어▼
유학할 학교로 부모가 직접 찾아가 학생들도 만나보고 교육방침, 교사진, 시설 및 설비, 교육과정 등을 살펴본 결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신의 자녀를 그 학교에서 1년 동안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정부에서 조기유학 전면 자유화 방침을 밝힌 것도 그런 결정을 하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교육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1만1237명이 조기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그 이유도 다양하다. 위에서 밝힌 이웃집 학생과 같은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주위 환경 때문에 도저히 마음을 잡고 공부할 것 같지 않아서 유학 가는 학생도 있다. 암기 위주의 공부보다는 창의적이고, 폭 넓고, 깊이 있는 탐구식 교육을 받기 위하여 유학을 가는 학생도 있다.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계발할 수 있는 보다 좋은 기회를 갖기 위해 떠나기도 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떠나는 학생들도 있다.
그동안 정부에서는 어떤 이유든지 유학을 가고자 하는 학생은 모두 갈 수 있도록 조기유학 전면 자유화 방침을 1월부터 입법예고해 왔다. 그러다가 돌연 종래 방침을 바꿔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유학을 갈 수 없도록 규제하는 법령을 4일 재입법예고했다. 그 이유는 “초중학생은 무분별하고 충동적인 유학생활에 따른 탈선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며, 의무교육단계인 중학교까지는 국내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면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아니다. 중학생 가운데 고등학생 못지 않게 분별력 있고,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학생도 있다. 중학생이나 초등학생만도 못한 고등학생도 많이 있다. 또 유학을 갈 수 있는 적절한 시기가 어느 때인가는 개인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자녀를 외국에서 공부하도록 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가가 결정해 줄 문제가 아니다. 학부모와 당사자인 학생이 함께 상의하여 결정해야 할 성질의 문제이다.
더욱이 조기유학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당국자도 인정하고 있듯이 실제적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유학생에게 학비와 생활비 등을 송금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지만, 이것도 친척이나 친구 명의로 하면 안될 것도 없다. 결과적으로 불법유학생만 양산하게 된다.
자기 자식을 좀 더 잘 가르쳐보겠다는 부모의 열망을 국가가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조기유학을 규제하는 일이 아니라, 종종 발생하고 있는 저질 유학알선업자들의 사기 행위를 철저히 단속하고, 국제교육진흥원 등의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들이 올바르고 풍부한 유학정보를 손쉽게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公교육 내실화부터 서둘러야▼
나아가 이미 발표한 학급당 학생수의 감축, 학교 시설 및 환경의 개선, 교원의 증원 등을 통해 공교육을 내실화하고,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제도의 도입, 대학부속학교의 자율화, 외국인 학교에의 내국인 입학 허용, 국제중고등학교의 설립 등을 통해 획일적인 교육에서 탈피해 학부모와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구태여 어린 자녀를 머나먼 이국 땅에 홀로 보내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외국학교에 못지 않은 충실한 교육적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고, 학생 각자의 적성과 능력에 알맞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재입법예고 기간 중에 정부 당국이 사회 각계 각층의 의견을 좀 더 폭 넓게 수렴하여,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진곤(한양대교수·교육학)maypol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