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선택 2000]"부시를 백악관에" 대회장 열광의 도가니

  • 입력 2000년 8월 4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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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 전당대회 마지막날 스케치▼

“저는 자랑스럽게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아들입니다. 이런 영예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함께 새로운 ‘미국의 목표’를 만듭시다.”

3일 오후 10시5분(한국시간 4일 오전11시5분). 필라델피아 퍼스트유니언센터의 연단에 오른 조지 W 부시 텍사스주지사가 공화당 대선 후보 지명을 수락하자 전당대회장은 온통 환호와 열광의 도가니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연단 앞 중앙에 자리잡고 있던 텍사스주 대의원들은 일제히 카우보이 모자를 집어던지며 발을 굴렀고 대회장을 가득 메운 수천명의 대의원, 교체대의원, 당원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우리는 조지 W 부시를 사랑해요’ ‘조지 W 부시, 딕 체니와 함께 새로운 미국을’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이 물결치는 가운데 연단 좌우에 비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내외의 모습이 비쳤다.

박수가 그치기를 기다려 연설을 시작한 부시 후보는 “필라델피아는 벤저민 프랭클린과 토머스 제퍼슨, 조지 워싱턴이 있었던 곳으로 워싱턴의 친구들은 그를 ‘조지 W’라고 불렀다”고 운을 떼 폭소를 자아냈다. 그는 이어 가족들에게 차례로 인사를 보내며 올 가을 대학에 진학하는 쌍둥이 딸 바버라와 제나에게 “너무 늦게 돌아다니지 말고 가끔씩 아빠에게 E메일을 보내 주겠니?”라고 말해 다시 웃음을 자아냈다.

부시 후보가 부친인 조지 부시 전대통령에 대해 “아버지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가장 기품 있는 분이었다”고 말하자 대의원들은 다시 기립박수로 경의를 표했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아들의 연설을 경청하던 부시 전대통령은 흐뭇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본론이 시작됐다. 부시후보가 “현 대통령은 많은 재주와 매력을 갖고 있고 많은 약속을 했지만 그것들이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었느냐. 빌 클린턴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은 미국의 번영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허비했다”고 질타하자 청중은 뜨거운 환호로 공감을 표시했다. 일부 대의원들은 “그들을 물러나게 하자(Let them go)”고 외치기도 했다.

부시 후보는 이어 사회복지 교육 국방 등 주요 현안에 대한 공약을 차례로 발표했다. 그가 말을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박수와 경적 환호가 터져나와 연설이 제대로 이어지기 어려울 정도였다. 특히 그가 “잉여예산은 국민의 돈이지 정부의 돈이 아니다”며 세금감면을 약속하자 대회장에는 ‘오 예(Oh Yeah)’라는 함성이 메아리쳤다. 청중을 안내하던 대회진행요원들도 상기된 표정으로 박수를 보냈다.

부시 후보가 단호한 어조로 “지도자는 당면한 문제를 남에게 떠넘겨선 안된다”며 “이 나라를 책임 있는 시대로 이끌기 위해선 대통령 자신에게 책임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자 청중은 막대풍선과 성조기 등을 흔들며 ‘조지 W 부시’를 연호했다.

청중의 열띤 호응 때문에 당초 38분 정도로 예정됐던 부시 후보의 연설은 한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부시 후보는 “밤은 물러가고 있고 우리는 새 날을 맞을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말로 후보수락연설을 마무리했다. 이에 맞춰 행사장 천장에선 빨강 파랑 하양의 삼색 풍선과 색종이 꽃술이 쏟아져 정치축제의 절정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연설을 마친 부시후보는 당원들의 박수를 뒤로 하고 대회장을 떠났으나 청중의 열기와 감동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필라델피아〓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부시 누구인가▼

조지 W 부시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는 사상 최고의 조건을 갖춘 대통령 후보로 통한다.

아버지가 전직 대통령으로 전통적인 정치 명문가 출신인데다 텍사스주의 이름난 부자라 선거자금 걱정도 없다. 그의 할아버지 프레스콧 셀던 부시는 은행업으로 큰 돈을 벌었으며 50년대에는 코네티컷주 상원의원을 지냈다. 바로 아래 동생인 젭 부시는 플로리다 주지사다.

게다가 딕 체니 부통령 후보를 비롯해 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대통령을 보좌하던 베테랑들이 대부분 그의 캠프에서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 이웃집 아저씨같이 소탈해 보이는 그의 이미지도 대중의 인기를 모으는 데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 후보는 환경문제에서 정보통신에 이르기까지 박학 다식을 자랑하는 고어 부통령에 비해 지적능력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그동안 국제문제를 비롯해 국정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거나 외국 지도자의 이름을 혼동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부시가 TV토론 등에서 고어와 맞붙게 되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부시 후보는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잘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지도자의 역할 가운데 하나는 뛰어난 전문가를 주변에 두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베트남 참전을 피하기 위해 텍사스주 공군 방위군에 입대했다는 의혹도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고어는 비록 전투병은 아니지만 베트남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부시 후보는 94년 텍사스 주지사에 당선될 때까지는 그다지 눈에 띄는 인물은 아니었다. 주지사에 당선된 것도 그의 능력보다는 아버지의 후광에다 프로야구 구단인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로서의 대중적인 인기 때문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98년 사상 처음으로 텍사스 주지사에 재선되면서부터 8년만에 백악관을 탈환할 공화당의 대표주자로 급부상했다. 그는 77년 텍사스 미드랜드 출신인 부인 로라와 결혼, 쌍둥이인 두 딸을 두고 있다. 부시 진영의 사람들은 교사출신인 로라의 ‘조용한 내조’도 부시의 대선 가도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전당대회 뒷얘기▼

○…조지 W 부시 후보의 후보지명 수락연설은 역대 대통령 후보들의 잘못된 연설 사례들을 철저하게 분석해 만들어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3일 보도.

부시 진영이 5월부터 준비해온 수락연설문은 잡지사 기자 출신의 마이클 거슨이 중심이 돼 작성한 것으로 참모회의를 통해 16차례 이상 수정을 거듭, 지난주에야 원고를 최종 확정.

이 과정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은 연설문 중에는 부시 후보의 아버지 부시 전대통령의 것도 포함돼 있다. 부시 전대통령은 88년 수락연설에서 “세금인상은 없다”고 단언했다가 재임중에 약속을 지키지 못해 4년 뒤 재선에 실패한 사례로 연구됐다는 것.

○…미국 전역에서 펼쳐진 선거 캠페인 기간에 부인 로라에 대한 청혼이 ‘생애 최고의 일’이라며 함박웃음을 짓던 부시 후보는 후보지명 수락 연설에서도 같은 말을 되풀이.

부시 후보는 로라에게 청혼한 것보다 더 잘한 일은 없었던 것같다며 “로라가 (나의 청혼에) ‘예’라고 답한 것이 로라 생애 최고의 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당대회에서 공화당 전국위원회에 25만달러 이상을 쾌척한 고액 기부자 137명(공화당 리전트)은 특별 대우를 받았다. 이들에게는 일반 당원과는 달리 천가방이 아니라 가죽 핸드백이 주어지고 이름표도 종이가 아니라 백금색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이들의 좌석은 시야가 활짝 트인 대회장 상층부의 ‘스카이박스’에 널찍이 배치돼 웹사이트 서핑도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슈퍼박스’로 불렸다는 것.

▼공화당 전당대회 결산▼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가 3일밤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로 대미(大尾)를 장식한 가운데 나흘간에 걸친 화려한 정치축제의 막을 내렸다.

부시 후보는 특유의 친화력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당원들에게 대선 승리의 비전을 제시했다. 부통령 후보인 딕 체니 전국방부장관도 빌 클린턴 대통령과 고어 부통령을 통렬히 비판하는 적극성을 보여 당원들로부터 열띤 박수를 받았다.

또 예비선거 과정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도 부시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 경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콜린 파월(전합참의장) 엘리자베스 돌(전 미국적십자총재) 등 명사들도 찬조연설에 나서 당의 단합을 과시했다.

이에 따라 이번 대회는 4년전 밥 돌 전 상원의원을 대선후보로 선출하던 때에 비해선 훨씬 활기가 넘쳤다는 게 중평이다. 또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부시 후보의 우세로 나와 8년만의 정권교체에 대한 자신감도 흘러 넘쳤다. 그러나 볼거리가 풍성했던 만큼 잔치가 끝난 뒤의 공허감도 적지 않아 보인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미국의 목적 경신’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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