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109세의 어머니

  • 입력 2000년 7월 28일 19시 24분


어머니의 생존을 확인하고 “오마니, 꿈은 아니겠디요”라며 눈물을 떨구는 광경은 혈육의 의미를 새삼 진하게 전해 준다. 120세 어머니를 찾는 신청자도 있었다. 누가 뭐래도 “살아 계시기만 한다면…” 이라고 되뇌며 어머니를 그리는 아들의 심정이 절절이 와 닿는다. 핏줄이 이처럼 소중할진대 8·15 상봉장에서 남과 북의 가족이 쏟아낼 눈물은 얼마나 될 것인가.

▷원래 공산주의의 가족이론은 생산이 늘고 사회가 진보함에 따라 사유재산과 함께 가족제도가 소멸한다고 보았다. 이 이론을 주장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가족제도를 봉건적 잔재쯤으로 간주했다. 봉건사회가 자본주의를 거쳐 공산화 사회로 이행되면서 그것이 깨진다고 했다. 북한과 중국의 민법이 가족이란 말 대신 ‘가정’이라는 용어를 주로 쓰고 있는 것도혈연개념을 바꾸기 위해서라고 한다.

▷북한이 1990년 10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한 가족법은 그 명칭에만 가족이란 말을 넣었지 법조문에서는 모두 ‘가정’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결혼은 가정형성의 기초이다’(제2조)라든가 ‘가정은 사회의 기층생활단위이다’(제3조), 또 ‘가정생활에서 남편과 아내는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제18조) 등 조문 어디에도 ‘가족’이란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법의 주 내용은 결혼과 이혼, 가정, 후견, 상속 등에 대한 규정이다.

▷이번 8·15 이산가족 상봉은 200명 선정명단에 든 신청자가 만나기를 희망하는 사람의 생사여부와 주소확인을 거쳐 이루어지는 것이다. 선정명단에 끼지 못하면 생사여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남쪽에서 만나기를 신청한 북한 내 이산가족 중 46.8%는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측이 생사확인을 요청한 남한 내 이산가족 중 절반도 이미 세상을 떴다고 한다. 이산가족의 대부분은 70, 80대 이상의 고령이다. 그들의 건강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가슴에 한을 담고 끝내 ‘만남’을 못 이룬 채 숨져 가는 이산가족이 더 있어서는 안 된다. 판문점이든, 어디든 빨리 면회소를 설치하여 이산가족 상봉이 대규모로 이뤄져야 한다. 이것은 거역할 수 없는 인도주의다.

김재홍<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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