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터뷰]<블러드,…>의 기타쿠보 히로유키 감독

  • 입력 2000년 7월 25일 17시 28분


자그마한 체구에 긴 머리, 텁수룩한 수염, 개구쟁이 같은 표정.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의 감독 기타쿠보 히로유키(36)는 작품 만큼이나 무척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이다.

한국에 오기 직전 감기몸살에 걸려 몸도 제대로 못가누는 최악의 컨디션이었지만 작품 상영후 1시간 넘게 열린 관객과의 대화나 밤 11시가 넘어 이루어진 심야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데 몸을 아끼지 않았다. 기타쿠보 감독의 기자회견과 <인랑>의 오키우라 감독, 프로덕션 IG의 이시카와 사장과 함께 나눈 관객과의 대화 내용을 정리했다.

▽기자회견

-작품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어둡고 침울하다.

-<블러드,…>는 내가 프로덕션 IG에 속했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작품이다. 만약 내가 디즈니에 있었다면 이런 작품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블러드,…>는 기술과 사람의 재능이 2인3각으로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50분이란 짧은 상영시간에 하고싶은 이야기를 다 했는지…?

-러닝타임 50분에 제대로 이야기를 다하지 못했다. 50분 동안에 할 이야기는 다했지만, 어떻게 인간의 이야기를 그 시간에 다할 수 있겠는가? 화면 밖의 대사로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50분의 이야기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이전의 이야기나 이후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그러면 왜 50분이란 런닝타임을 택했는가?

-이번에 90분의 길이의 작품을 만들기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여건 상 불가능했다. 일본 영화 톱레벨 수준의 많은 예산이 들어갔지만 그것으로 만들 수 있는 한계가 이것이다. 내가 자주 '나에게 <타이타닉>을 만들라고 요구하려면, 그만한 예산을 달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무리하게 시간을 늘이기 보다 완성된 작품을 만들기 위해 50분을 택했다.

-시대적 배경이 미군의 북폭으로 월남전이 확대되는 시점인데…?

-인간이 서로 죽이고 살리는 것을 묘사하고 싶었다. 일부러 그런 시대를 택한 것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다루려다 보니 그 시기를 택하게 됐다. 요코다 기지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도 전쟁이란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전쟁이란 이미지는 마지막 엔딩 타이틀이 나올 때 '라이브 액션'으로 묘사했다.

-직접 제작한 입장에서 풀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장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이 작품을 컴퓨터를 쓰지 않고 만들려면 지금의 10배의 예산이 필요하다. 또한 필요한 재능 역시 몇 배가 필요하다. 하지만 컴퓨터를 통해 1/10로 줄였다. 그러나 거꾸로 묻고싶다. 집에서 편리한 기계를 써서 시간이 많이 남고 한가해졌는가? 컴퓨터를 써서 시간을 줄이는 만큼 일해야 하는 물량이 더 많이 늘어났다.

-감독으로서 작품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

-그것도 보는 사람이 작품에서 느끼기를 바란다. 반성할 부분은 많지만 후회하는 부분은 없다. 이런 장면은 없었으면 하는 후회를 느끼는 컷은 없었다. 이 작품을 만들면서 내 수명의 5~10년을 투자했다. 하지만 그런 인생을 택했기 때문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관객과의 대화

-마지막 장면에서 헌터인 사야가 자신의 팔목에서 떨어지는 피를 죽어가는 뱀파이어의 입에 떨어뜨리는 모습은 어떤 의미인가?

-이 작품에는 아름다운 장면이 별로 없는데 주인공 사야가 작품 전체에서 거의 유일하게 미소를 띠는 장면이다. 그 미소의 의미를 굳이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작품을 보며 느끼는 상상의 재미를 빼앗는 것이다.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이 '산처럼' 많아 재미없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부분을 관객들이 상상해서 느끼길 바랬다.

-마지막 장면에서 양호선생이 말한 "사람들이 서로 죽이는것…"이란 말이 영화의 주제를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은데.

-감독이 정말 대답하기 싫어하는 것만 물어보는 것 같다.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은 관객에게 돌리고 싶다. 관객들이 작품을 보면서 가진 생각이나 느낌으로 판단할 문제이다.

-미군기지를 극중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는 ?

-가능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요코다 기지는 일본 내의 미국이다. 도쿄 내에 샌프란시스코같은 도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당신들의 작품에는 일관된 스타일이 있는데?

-(이시카와 사장 답변)나에게 11살과 4살짜리 딸이 있는데, 늘 "아빠, 우리도 알기 쉬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주세요"란 요구를 받는다. 나는 기타구보 감독이나 오키우라 감독에게 "우리가 만든 작품이 어린이들이 당장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세상에 대한 경험을 쌓게 되었을 때 공감이 가고 가슴에 담게 될 그런 작품을 만들자"고 말한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아직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뒤쳐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오키우라 감독 답변) 아직까지 정성을 들여 제작한 한국 애니메이션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해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정성들인 작품을 아직 보지 못했다는 것. 볼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고 그런 작품이 아직까지 없었을 수도 있고. 두가지를 모두 포함한 대답이다. 이것이 나의 솔직한 대답이다.

부산=김재범 <동아닷컴 기자>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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