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기련/油類 원가구조 손질해야

  • 입력 2000년 7월 13일 19시 01분


국내 석유제품 공급은 복수의 민간업체들이 맡고 있다. 이들은 97년 정부의 시장자유화 조치로 가격결정 권한까지 부여받았다. 이 조치의 목적은 시장 진입 자유화, 제품 수입 허용 등 규제 철폐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산업구조를 적정화하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비용 소비자 전가해 이윤 내▼

정부는 심지어 남북분단이란 특수성을 감안해 취해 왔던 ‘소비지 정제 원칙에 의한 안정공급 우선정책’마저 없앴다. 이는 정부의 규제와 보호 아래 시행돼 온 ‘설비 경쟁’에서 소비자를 위한 ‘제품 경쟁’으로의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경쟁이라는 시장원리를 부각시켜 밖으로부터의 가격 인상 요인을 소비자가격 인상으로 전가(轉嫁)해 온 기존의 행태를 개선하기 위한 기대이기도 했다.

이같은 정책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내 정유회사들의 관행과 의식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국내의 석유제품 생산원가(공장도)는 선진국에 비해 10% 이상 높다는 지적이 있다. 또 제품 수입을 포함한 신규 시장 진입은 여전히 쉽지 않다. 원유가 인상에 따른 가격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원유 선물거래나 개발수입 비중은 10% 이하의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투자 회피로 인한 경직된 설비구조는 중질유 제품의 덤핑 수출을 유도하고 있다. 이러고도 국내 정유사들은 상당한 이윤을 내는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이는 외국의 경우와 견주어 볼 때 가히 ‘불가사의한’ 현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정유산업은 국제적으로 불황산업에 속하기 때문에 이윤이 적은 편이다. 선진국의 경우 정유부문보다는 원유 생산과 수송 등 속칭 ‘상류부문’에서 이윤을 내고 있다. 상류부문의 이윤으로 ‘하류부문’(정유)의 경쟁과 소비자 보호를 가능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상류부문은 거의 없고 하류부문만 있다. 즉 석유산업은 없고 정유산업만 있는 셈이다. 이런 여건에서 이익을 낸다는 것은 정유사들이 수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시설투자와 안정적인 원유 도입에 필요한 부대 비용 등을 스스로 부담하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런 구조는 지금의 개방화 국제화시대에서는 장기간 지속될 수 없다.

우리의 정유산업을 진정한 석유산업으로 발전시켜 제품의 안정적 공급을 가능하게 하고 제품 경쟁을 통해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구조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첫째, 석유제품의 가격 결정이 세수 증대라는 목적에서 탈피해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세수 확보를 위해 제품별 용도별로 가격차별정책을 시행해 왔으며 그 수단은 세율(稅率) 조정이었다. 그 결과 일부 제품의 경우 세금 비중이 판매가의 75% 수준에 이르기도 하고 국내가격이 선진국에 비해 3배 이상 비싸기도 하다. 석유제품에 대한 세금 액수는 총 국세의 10% 수준이나 될 정도다.

▼정유산업 설비 고도화도 필요▼

따라서 진정 소비자를 보호하고 민간산업의 구조개편을 유도하려면 무엇보다 세수 확보를 위한 가격결정 정책이 사라져야 할 것이다. 특히 가격 탄력성이 낮은 일반 소비자용 제품에 국한한 세율 조정에 의한 임기응변식 가격조정은 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정책이 독립적으로 추진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정유산업의 설비구조 고도화를 적극 유도해야 한다. 69∼98년 대표적 경질유인 휘발유 소비는 80배 증가했으나 중질유인 벙커C유는 5배 이하 증가했고 중유는 그 절대소비량이 오히려 줄었다. 덤핑 수출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중질유 분해 설비를 증설하기 위한 투자가 시급한 상황으로 석유세금의 일부(약 2조∼3조원)를 정유산업 고도화에 투자(대부분 융자형태)해야 할 것이다.

셋째, 국내 석유제품 원가 구조에 대한 분석과 연구를 조속히 시행해 사회적 합의에 따라 정유산업의 발전 방향을 도출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장기적 혜택을 위해 당장의 고통을 분담하도록 소비자들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최기련(아주대교수·에너지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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