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따라잡기] 포철 DR발행연기 철회가능성 없어

  • 입력 2000년 6월 22일 11시 22분


산업은행 보유 포항제철 지분(6.84%)의 해외DR 발행이 연기 방침이 정해진 가운데 어제 해외DR 가격이 폭등(9%)해 극적인 타결 가능성이 일부 시장에 추론되고 있으나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동아닷컴 6월9일자 연기가능성 첫보도 참조).

22일 산업은행과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포철매각 협상단은 최종 프라이싱 작업에 들어가긴 전에 이미 주간사인 메릴린치 등에 가격하락 이유로 매각연기 방침을 밝혔고,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도 이를 통보했다. 이에 따라 협상단은 오늘 저녁 국내에 도착할 예정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포철의 해외DR가격이 어제 급등했으나 이미 정부 부처와 산업은행 내부에서 연기방침을 결정하고 이를 대외로 알린 바 있다”면서 “현지 사정이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 확정할 수는 없지만 하반기에 시장상황을 고려해 재추진한다는 게 현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포철의 해외DR가격은 20일 종가로 24.25달러를 기록, 전날보다 9% 가량 폭등세를 보여 20일 현재 마이너스(-) 프레미엄이 플러스(+) 상태로 반전됐다. 포철 국내 종가는 어제 9만7,400원으로 떨어졌고, 이를 20일 종가 해외DR값과 비교하면 현재 플러스(+) 10.8%의 프레미엄 상태로 바뀌었다.

특히 어제의 DR가격 폭등은 주간사를 맡은 메릴린치가 정부의 가격하락에 따른 연기 통보가 전해진 뒤 이를 반전시키기 위해 포철 DR을 매입하면서 장마감 뒤까지 산업은행 협상단에 연기방침을 철회하라는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메릴린치는 주간사로서 시장조성의 필요성과 자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포철의 DR단가를 낮추는 전략을 택했다가 국내에서 가뜩이나 헐값 매각 비판을 받지 않으려는 산업은행과 정부의 신경을 지나치게 자극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산업은행과 정부는 포철의 주가가 과도하게 떨어진 상황이지만 공기업 민영화를 계획대로 추진하다는 대내외 약속을 이행하고자 자사주 매입 소각과 해외DR 발행을 병행 추진했는데, 국내 주가하락으로 절대가격이 낮은 상태에다가 로드쇼 진행전 플러스(+) 프레미엄이 로드쇼가 진행되면서 마이너스(-) 프레미엄 상태로 바뀌자 불가피하게 공기업 민영화 연기에 대한 대내외적 비판을 무릅쓰고 연기를 최종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산업자원부 고위관계자는 “당초 공기업 민영화라는 큰 원칙 속에서 시장상황을 고려해 매각을 추진한다는 중간과제를 병행, 헐값이라고 판단되면 매각일정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면서 “적정가 보전을 위해 자사주 매입 소각 등까지 허용했으나 절대가격이 낮은 사태에다 로드쇼가 진행되면서 오히려 프레미엄까지 마이너스(-)로 바뀌어 부득이하게 매각연기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연기방침 번복 가능성을 묻자 “산업은행 매각추진단이 연기방침을 대내외로 알리기 전에 SEC에 통보한 뒤 공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절차상 그리 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산업부 다른 관계자는 “포철 DR값이 어제 폭등했지만 프라이싱 작업 2∼3일전에만 그렇게 됐어도 연기를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오늘 저녁 매각추진단이 국내에 도착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산업은행의 포철 보유지분 매각 연기 결정이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면서 “공기업 민영화라는 대원칙을 추진하되 가격 등의 구체적인 결정은 매각당사자가 최종 결정하는 것인데 시장원칙상 손해를 볼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장전문가들은 포철주 해외 매각 연기가 단기적으로 외국인들의 매수를 유인하는 힘을 줄여놓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산은의 시장판단을 정당하게 판단하면서도 향후 민영화계획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실천의지가 천명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시장의 한 철강 전문가는 “메릴린치가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약속 이행을 명분으로 과욕을 부리다가 산업은행과 정부의 연기방침 통보로 당혹스러움에 빠진 것 같다”면서 “단기적으로는 찬반 양론과 이견이 분분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가 어떻게 실천될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해외 DR 발행여건이 하반기에 국내 경기 둔화세와 철강 업종의 둔화세가 겹치면 시장상황이 현재보다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데는 다소 무리가 있다”면서 “산은이 하반기 발행 입장을 밝혔으나 기간설정보다는 현 시점에서는 차분하게 종합적인 재검토 작업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기석 <동아닷컴 기자> dong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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