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대토론/의약분업 논란]이덕승-신상진씨

  • 입력 2000년 6월 8일 19시 43분


의약분업의 7월 1일 실시를 한 달도 채 남겨 놓지 않았지만 의약분업에 대한 의료계의 반대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의료계는 약사의 임의 조제 근절 방안 마련, 전문 의약품 확대 등을 요구하면서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의약분업을 연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의료계는 집단 폐업까지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 사회단체들은 의약분업은 의약품 오남용을 줄여 국민 건강을 증진하고 장기적으로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제도라며 의료계가 집단 이기주의를 버리고 의약분업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찬성/약물 오남용 막아 국민건강 증진▼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의약분업과 관련해 의료계는 지금 여러 가지 요구 사항을 내세우며 폐업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의약분업의 성공적 정착에 가장 큰 장애물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의료계는 진료 전달 체계, 의약품 분류 및 약효 동등성 확인, 의료보험제도 개혁 등 전반적인 의료 제도를 정비한 뒤 의약분업을 실시하자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들을 다 정비한 뒤 의약분업을 실시한다는 것은 기약하기 어려운 일이다.

의료계가 장기적으로 보완해 나가야 할 사항들을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며 의약분업을 반대하는 것은 의사회 스스로 합의한 의약분업안에 대한 불이행임과 동시에 대국민 약속을 저버리는 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현 시점에서 의약분업을 둘러싼 쟁점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째, 의료계는 현행 의약분업안으로는 약물 오남용이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일반 의약품으로 분류된 약물의 수가 선진국에 비해 너무 많고, 약사가 알루미늄 은박으로 포장된 일반 의약품을 낱개로 팔 수 있으며, 의사의 사전 동의 없이 대체 조제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약물 오남용을 막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의료계는 의약품 재분류 및 약사법 재개정, 의사의 사전 동의 없는 대체 조제 불가, 의약품 낱개 판매 금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우선 보건복지부가 최종 확정한 의약품 분류안에 따르면 전문 의약품은 61.5%, 일반 의약품은 38.5%이다.

한편 재분류 이전에 일반 의약품의 매출액 비율이 약 27%였던 점을 감안하면 매출액 기준으로는 일반 의약품의 비율이 약 18%로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매출액 기준으로 볼 때 이미 선진국 수준(미국 24.5%, 일본 15.6%, 독일18%, 프랑스 11% 등)의 분류가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최소한의 약품만 일반 의약품으로 남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상태에서 알루미늄 은박 포장 의약품의 낱개 판매까지 금지해 30정 이상 단위로만 구입하게 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약을 사야 하고 복용하고 남은 의약품의 오남용 가능성도 있다.

약사의 임의 조제와 관련해서는 약사법 개정으로 법적 규제가 강화되고 조제료 책정과 같은 이윤 동기도 마련돼 임의 조제에 따른 약사의 실익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한편 소비자 입장에서 대체 조제는 바람직한 측면이 많다. 일단 약효 동등성 시험으로 저질 의약품이 퇴출되므로 의약품 품질이 향상될 수 있고 약효가 같은 값싼 약으로 대체할 경우 부담이 줄고 의사가 처방한 상품명의 약이 약국에 없으면 약효가 같은 약 리스트에 있는 약으로 대체 조제함으로써 조제 시간도 단축될 수 있다. 대체 조제는 환자가 동의할 때만 허용되므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의사의 사전 동의를 의무화해서 바람직한 대체 조제마저 위축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

둘째, 의료계는 현행안대로 의약분업을 실시하면 국민의 불편이 너무 커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의료 이용 관행이 너무 편해서 약물 오남용이 방치되는 결과를 빚었기 때문에 새로운 제도에 익숙해지는 과정에서의 불편은 감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이와 함께 의약분업 예외 지역 지정, 예외 의약품 지정 등 부득이한 경우를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으므로 불편은 최소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의료계는 의약분업으로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증 환자의 경우 이제까지는 병의원이나 약국 중 한쪽만 이용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양쪽을 모두 이용해야 하므로 부담이 증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병의원을 주로 이용하던 환자들은 기존 의료비를 병의원과 약국에 나누어 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로 약국만 이용하던 환자들은 의사의 정확한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게 돼 자가 투약 및 부정확한 진단으로 인한 건강상의 위해를 예방할 수 있게 돼 장기적으로 의료비가 절감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의약분업은 국민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이므로 의료계는 국민과의 약속을 이행할 수 있도록 의약분업 정착을 위한 준비에 조속히 착수해야 할 것이다.

이덕승 <시민운동본부 운영위원장>

[약력]

△54년 충남 공주 출생 △연세대 법학과 졸업 △한국YMCA 전국연맹간사 △서울YMCA 시민중계실장 △녹색소비자연대 사무총장 △의약분업 정착을 위한 시민운 동본부 운영위원장

▼반대/준비 제대로 안돼 의료質만 저하▼

의약분업이란 원래 의사와 약사의 기능을 엄격히 구분해 의사의 처방 없이는 조제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약이 부적절하게 또는 비전문적으로 사용돼 일어나는 건강상 위해와 오남용 폐해로부터 국민건강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7월부터 시행하려는 의약분업은 이같은 의약분업 본래 취지에 근본적으로 배치된다. 분업대상에 주사제를 포함시킬 정도로 엄격하게 의사의 조제와 투약을 금지하는 반면에 소위 ‘국민편익’이라는 다른 가치기준을 내세워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약사의 진료행위 금지는 적당히 규정함으로써 의약분업 시행 후에도 약사의 진료행위는 얼마든지 가능하도록 돼 있다.

새 약사법에는 낱개로 포장된 약을 혼합해 팔 수 있게 돼 있고, 약품분류상으로는 분류기준이 잘못돼 있으며, 일반의약품 비중이 거의 45%나 돼 선진국의 20%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더구나 의사의 사전 동의 없는 대체조제 허용 등이 국민편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약사에게 이런 재량권을 부여하기에는 우리나라 약효 동등성 검사가 너무 부실하고 약사의 진료관행 때문에 부적절하며 약사의 진료행위를 조장하면서 의사의 진료권을 심각하게 훼손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분업대상이 아닌 한약의 조제와 끼워 팔기, 반복처방과 최근 정부가 발표한 소위 리필처방전제 등도 약사들이 불법 진료행위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의약분업의 원칙과 국민편익이라는 가치기준이 이중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약사의 조제권은 배타적 지위를 갖게 되는 반면에, 의사의 진료권은 사회적으로, 오히려 지금보다 더 취약해진다.

일부에서는 어쨌든 7월부터 전문의약품이 의사의 처방권 내에 들어오게 되는 만큼 약사의 임의조제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해도 현재의 무정부적 상태보다는 오남용 실태가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관점이다. 그러나 이는 약의 오남용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의사의 진료권이 사회적으로 확립되는 것이 보다 선결과제라는 사실을 간과한 단견이며 오남용의 실태와 원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결과이다.

한 사회의 약의 오남용 정도는 그 사회의 유사의료시장의 규모에 정비례한다. 의사는 진찰과 처방만을, 약사는 진찰 처방 조제 모두를 할 수 있도록 한 기형적인 정부의 의약 분업안의 시행이 공식적인 의료시스템을 위축시키는 반면 약국 중심의 유사의료시장을 확대시킬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렇게 의사의 진료권이 훼손됨으로써 유사의료시장이 확대돼 결국 국민건강이 훼손되는 기형적인 분업안 시행을 의사들이 수용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정부가 제도적 보완과 시범사업을 통해서 실제적인 문제점을 찾아 보완하고자 하는 노력 없이 의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하겠다는 그 이면에는 국민보건을 위한 의료예산을 오히려 줄이려는 것과 형식적인 의료제도 도입을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다른 목적이 숨어 있어 보인다.

의약분업 시행과 관련해서 정부는 마치 국민건강을 위한 것인 양 온갖 생색을 다 내고 있지만 국민의 의료 이용 문화를 혁명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엄청난 일을 벌이면서 재원조달 방안조차 없는 정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또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민의 경제적 부담은 늘어나지 않는다고 선전하더니 최근 담화문에서는 의약분업 초기에는 국민부담이 늘어난다고 말을 바꾸는 정부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그리고 잘못된 제도시행과 정책실험으로 의약분업 제도 자체의 변형과 왜곡은 물론, 고질적인 의약분쟁 가능성, 의료전달체계의 왜곡 심화, 의료의 질 저하 등 숱한 부작용에 대한 염려는 묻어둔 채 정부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매우 의심되는 ‘시행 후 점진적 보완’이라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정부는 더 이상 의사들을 통치의 대상으로, 의료정책의 피동적 수용자로만 보는 구태의연한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국민건강 복지 실현을 위한 중차대한 개혁 과제를 재정부담도 없이 생색만 내면서 ‘되면 좋고 안 돼도 내 탓은 아니다’는 식으로 실험해보려는 안이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버리고 7월 시행되는 의약분업을 진지하고 책임있는 자세로 재검토해야 한다.

신상진 <대한의사협회 의권쟁취 투쟁 위원장>

[약력]

△5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의대 졸업 △성남 외국인 노동자의 집 부이사장 △성남시민모임 집행위원장 △아파트 공동체 문화연구소장 △대한의사협회 의권쟁취 투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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