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존]커다란 눈동자로 애정을 호소한다 '플록하트'

  • 입력 2000년 6월 8일 10시 28분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들>은 삶에 대한 불안과 회한이 눈물처럼 흐르는 영화다.

사랑을 찾고 마음 둘 곳을 찾는 여자들의 이야기. 그러나 그들을 지탱해 줄 행복은 그리 쉽게 잡히지 않는다. 바로 앞에 다가온 불행조차 짐작할 수 없는 것이 이 평범한 여자들의 모습이다.

죽어가는 연인이 어린 시절에 키웠다던 카나리아를 새장에 넣으며 이별을 준비하는 크리스틴, 애처롭게 마른 몸의 칼리스타 플록하트(35)가 연기하는 이 레즈비언 여성도 마찬가지다. 살짝 누르기만 해도 연민의 눈물이 배어나올 것 같다.

카드점을 치는 크리스틴은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읽어 주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에 이르러서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플록하트는 그처럼 나약하면서도 "사랑을 간절히 원하는" 여성의 모습으로 다가 오는 배우다. 작은 상처에도 짓눌려 버릴 듯한 그녀는 <엘르> 지의 표현에 따르면 "판단하기 이전에 먼저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애초에 플록하트는 이처럼 여린 여성이 아니었다. 혼자 뉴욕으로 떠나와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 섰던 그녀는 다쳐서 일을 할 수 없을 때 부모에게 도움을 청하는 대신 통조림 두 개로 하루 식사를 때웠다.

오랜 무명 시절을 벗어나게 해 준 체홉 원작의 연극 <세자매>에서도 플록하트는 차가운 성격의 나타샤를 연기했다. 함께 공연한 릴리 타일러와 에이미 어빙, 진 트리플혼에게 눌리지 않고 빛났던 플록하트는 "TV에는 절대 출연할 것 같지 않은" 강단있는 배우였다. 그러나 친구에게 이끌려 TV 시리즈 <알리 맥빌>의 오디션에 응모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 놓은 TV 시리즈 <알리 맥빌>은 독백처럼 펼쳐지는 <그녀를 보기만…>과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경쾌한 시트콤에 가까운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하버드 대 출신의 변호사 알리 맥빌(칼리스타 플록하트)이다.

그러나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이 매력적인 변호사도 결혼한 전 애인 앞에서는 허둥대기만 한다. 그녀는 "세상을 바꾸라면 바꾸겠어. 하지만 그 전에 먼저 결혼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타임> 지가 "페미니즘의 종말"이라고 부르는 <알리 맥빌>. 이 시리즈는 여자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 무엇보다 사랑이라고, 남자 따위는 곁에 없어도 좋을 듯한 변호사의 입을 통해 강변한다. <알리 맥빌>에 출연하면서 무대를 관통하던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는 애정을 호소하는 상실의 징표가 되었다.

풍부한 감정을 전달하던 입술도 연애의 환상을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너무 연약해 보여 플록하트가 거식증에 걸렸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더 이상 내가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정체성을 희생한 대가로 그녀는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플록하트는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들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녀는 알리 맥빌과 "당신의 개라도 되겠다"며 연인을 쫓아 다니는 <한여름밤의 꿈>의 헬레나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려워 하는" 강박을 발견한다.

여성들까지도 플록하트를 사랑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누구나 품고 있는 강박과 환상을 플록하트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그녀는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면서도 "사랑받고 싶은 것은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인정한다.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사랑의 환상은 엄연한 현실의 한 부분인 것이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대한 현실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플록하트. 그러므로 서른 다섯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그녀는 여전한 가능성을 지닌 배우다.

김현정(parady@film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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